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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신애

은은 2011. 7. 12. 18:48

<밀양>에서 신애(전도연)가 겪는 수난은 그녀의 첫번째 멍에도 마지막 멍에도 아니다. 영화 안에서 신애는 남겨진 유일한 가족인 어린 아들을 잃는다. 바닥에 쓰러진 그녀는 기적처럼 신앙에 의지해 일어서지만 잔인하게도 믿음을 산산조각 내는 일이 닥친다. 하지만 관객은 스쳐가는 암시를 통해 신애가 과거에 입은 내상들도 짐작할 수 있다. 착란상태에 빠진 신애는 중얼중얼 피아니스트의 꿈을 억압했던 아버지를 원망하고,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옮긴 채 죽어버린 남편을 욕한다.

 <밀양>이 우리의 눈을 오래 붙드는 것은, 유괴라는 뜨거운 범죄를 스토리의 뇌관으로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아니라 인물이 영화의 심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신애는 '자식 잃은 어머니'라는 처지 하나로 설명되는 캐릭터가 아니다. 오히려 성격에 기인한 비극을 맞이하는 고전적인 인물에 속한다. 신애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그녀가 삶을 대하는 고유한 태도와 가냘프지만 질기게 연결되어 있다. 신애는 집요하고 야심적인 여인이다. 신애에겐 강렬한 인생의 이미지가 있다. 그녀는 더 이상 훼손되거나 간섭받지 않은 채, 원하는 모습으로 타인의 눈에 비춰지며 살고자 한다. 우리는 그녀가 좌절한 예술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객지에서 삶을 재건하려는 계획은, 잘 풀리지 않는 그림을 중도에 뜯어내고 백지에 다시 스케치를 시작하고 싶은 화가의 욕구에 비할 만하다. 아는 이 없는 도시 밀양에 온 신애는 스스로 상상한 과거를 이웃에 퍼뜨린다. 넉넉한 유산과 교양, 각별했던 남편과의 애정을 과시한다. 신애가 속이고 싶은 사람은 타인만이 아니다. 집을 찾아온 동생이 매형의 불륜을 언급하자 신애는 잘라 말한다. "사람들이 잘못 아는 거야. 애아빠는 나랑 준이만 사랑했어."

 모든 노력을 통해 신애가 '밀양'으로부터 기대하는 반향은 부러움 섞인 호감이다. 인생의 3막을 위해 신애가 세심히 준비한 포즈는 유괴범의 협박 전화가 걸려온 밤 와르르 무너진다. 이 대목에서 이창동 감독은 조금 잔인하다. 범인은 돈 많은 척하는 신애의 허세를 믿고 아들을 납치했지만 실제로 신애에겐 범인이 요구하는 현금이 없다. "다 거짓말이었어요. 보험금은 남편 사업하다 진 빚 갚고, 여기 학원 얻고, 인테리어 하면서 거의 다 쓰고......" 신애는 시시콜콜 비굴하게 실토한다. 아이는 차갑게 식은 시체로 돌아온다. 집요한 신애는 죽음 같은 고통을 비집고 빛이 새어 들어오는 구멍을 찾아낸다. 과거를 '무화'하고 '거듭날' 수 있다는 교회가 그것이다. 긍지 높은 그녀가 인생의 4막에서 세운 목표는 인지상정을 극복한 우월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면회 가서 만난 범인은 자신도 신에게 귀의했다며 성스러운 용서를 베풀 권력을 박탈해 버린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들림'을 받으려던 계획이 좌절되자 신애에게 남은 길은 신과 대결하는 것뿐이다. 부러 계명을 거역하여 이웃의 물건을 훔치고, 독실한 장로를 유혹하고, 부흥회를 난장판으로 만든다. 끝내는 하늘에 '똑똑히 보라'고 오기를 부리며 손목을 긋는다. 하지만 다음 순간 우리는 길거리에 뛰쳐나간 신애의 어린아이 같은 호소를 듣는다. "살려주세요." 오랜 시간 그녀가 온갖 말과 행동으로 세상에 외쳐온 한마디는 바로 그것이었다. 삶에서 미학을 추구하는 신애의 고질은, 그녀를 살아 있는 이들 곁에도 죽은 이들 곁에도 머물기 힘들게 만든다. 결국 신애가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는 그녀를 편애하는 신이나 동경하는 이웃이 아니라, 친절을 베풀다가도 뒷말을 하는 이웃과, 호감을 사려고 부지런을 떨지만 도움은 되지 않는 남자다. 승자는 의상실 로망스의 사장과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이며, 소도시 밀양이며, 땅 위의 현실이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신애가 의상실 주인 아주머니와 재회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그녀가 처음 그 사실에 수긍하는 순간이다. 넉살 좋게 환영하던 이웃집 여인은 짝짝이로 잘린 신애의 머리에 놀라 실언을 한다. "오매오매 어쩌까, 미쳤는갑다." 실수를 깨달은 여자가 입을 가리며 열없게 웃고 신애가 피식 웃음으로 화답한다. 그토록 필사적으로 물고 있던 끈을 신애의 어금니가 놓는 순간이다. "삶의 중요한 결정은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내려져 있어. 희망을 찾으려거든 여기서 찾아. 응석 부리지 마." 이창동 감독이 냉정하게 속삭인다. 신애는 각성한다. 그러나 마침내 나부끼는 항복의 백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가슴은 허전하다. 한 여인의 마음 속에서 예술가와 소공녀가 사라진 것이다.


김혜리, <영화를 멈추다-서른 편의 영화, 서른 개의 장면> 한국영상자료원 2008, 38-41

 
문제는 '항복' 이후이다.
신애는 땅 위에서 애쓰는 남자 종찬과 살게 될지도 모른다.
나날을, 자신의 모든 행위와 벌어지는 사건이 모두 의미로 꽉 차 있지는 않은 그 일상을, 그저 시간 위에 둥둥 떠서 생의 끝을 향해 흘러가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저토록 집요했던 신애가 자신이 들어올린 백기의 의미를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허허하게 견디다 견디다, 어느날 정말 조용히 혼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가 버릴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정말이지 조용히.
혹은 차라리, 카센터에 어느날 커피 배달을 올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가슴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