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
* 11월 말에 사 두었던 황정은의 짧은 장편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고(창비에 연재됐던 거네?!) 이어 얼마 전 눈에 들어온 박연준이란 1980년생 시인의 산문집 <소란>을 펼쳐 읽었는데 마치 같은 사람의 글인 듯하다.
* 황정은의 긴 소설들은 확실히, 모두 성장 소설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백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에 이어, 아이들이거나 아이들처럼 보이는 청년들의 이야기.
폭압의 세계에서 이 소설가가 마음이 쓰이는 것이 어리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
가난함도 일종의 '어림'일 수밖에 없으므로 전체적으로 '어린 사람들' 이야기라고 느껴지는 걸까.
또, 이 작가는 눈과 마음이 가는 이 '어린' 사람들에게 가혹하고 싶지 않아서 소설 속에 제대로 나쁜 어른 하나 설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또 전체적으로 더 '어리게' 만드는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의 어림'에 관하여, 참고하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은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박민규의 소설들을 읽으며 가졌던 질문(밑바닥에 깔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에는 이 작가의 문체가 너무 부르주아인 건 아닌가. 게다가 그는 그 문체로 스타 작가가 되었으니, 이는 또다른 착취 아닌가.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를 할 때 적절한 미학이란, '착취' 따위를 떠올리지 않을 만큼 윤리적인 미학이란 어떤 것일까, 가능할까, 침묵뿐인 건 아닐까 등등)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선, 어휘가 몇 개 없으니까. 그리고 다 욕이고.
한편, 사람들은 가난함도 부유하게 즐기고 싶어하는 것이 진실이다. 적절한 대비는 아니겠지만, 절대로 중산층조차 못되는 사람들이 보수여당에 투표하는 것처럼.
생각해 보니 김애란의 소설들도 비슷했던 것 같다. 역시 작가의 생물학적 연령과 인생 경험의 문제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볼 수 있을 수도.
*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나기네 엄마인 순자씨가 이 소녀들이 가출한 엄마를 기다리며 쉰 떡을 먹는 걸 발견했을 때.
끝까지 뱉지 않고 다 먹은 후, 맛있으니 우리집 밥이랑 바꿔먹자, 하던 대목.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거, 사려 깊은 사람이 된다는 거, 괜찮은 사람이 된다는 거, 사람답다는 거...
*박연준 시인의 시(아버지는 나를 처제,라고 불렀다)는 사랑받고 싶은 여자/딸의 시 같다. 김행숙이나 일련의 고대 미래파 여자 시인들(생각나는 대로 하재연, 또 누구였지? '비성년열전'의 저자?, 암튼)처럼 작위적이고 지적인 의식의 유희가 없고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