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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리다, 박연준

은은 2015. 2. 23. 19:16

웅크리다

 

 

웅크리고 보호색을 띄고 있는 것들은 모두 슬프다

잠잠히, 발견되지 않기를

눈을 감고 기다리는 것들

사라졌기를, 사라졌기를

다만 바란 채

바닥보다 더 간절히 엎드리는 것들

 

수천 마리 양들을 잠재우기 위해

지나온 시간이 보호색을 띤다

내일 오후 2시쯤 죽게 될 사랑을 위해

 

지나가는 추억아

우리는 '고요'라는 그릇에 담긴 과거다

 

잃어버린 신발에 대해

남아 있는 발이 황량한 빛깔로 굳어지는 일

 

멀리서부터 태양이 걸어온다

반짝이는 척하는 별들은 모두 떨어져야 한다

 

 

--문학동네 시인선 028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