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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은은 2010. 5. 7. 08:41


홍상수 감독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그 사람의 영화들을 차례로 생각해 보면, 감독 자신의 개인으로서의 성장 혹은 변화의 기록이기도 하고,
이방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뚝 떨어진 사람이 조금씩 거기에 적응해 가면서 나오는 태도와 인식의 기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방인이지만 그 사회와 아주 무관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거기에 '핏줄'이 얽혀 있다.
이것이 홍상수 영화가 한국 사회를 대하는 그토록 특이한 감각과 뉘앙스가 만들어지는 까닭이란 생각이 든다.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절망적인 조건과 마주쳐 선택을 해야만 할 때, '풍자냐 자살이냐' 중에서 홍상수의 초기 영화들은 확실히 '자살' 쪽에 가까웠고 점점 '풍자'로 옮겨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하하>는, 마지막 문경의 주저앉음이 보여 주듯(캐나다에 가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고, 어딜 가서 뭘 해도 잘 살 것 같지 않다), 부조리를 얼마든지 받아들여 웃음으로 되돌려 주긴 하겠지만 사실 그 속으로는 절망과 피로가 굳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다. 그나마 '저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그을 수 있는 선이 분명할 때에는 동떨어진 것, 어긋난 것, 이상한 것들의 좌표도 분명하고, 나아갈 방향도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있다 보면 '저것은 내가 아니지만 저것도 제 나름으로는 창의적으로 애를 쓰고 사는구나' 하게 되는 것이다.
절망은 기교를 세련되게 한다는 말을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영화들에는 점점 더 관습적인 사람들이 나온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강원도의 힘>의 인물들은 겉으로는 적어도 멀쩡한 척 진지한 척 살아가면서 속으로는 사회의 어떤 법이나 질서에도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는데,
<하하하>의 인물들은 겉으로는 모두 비범한 언행의 방식을 보여 주지만 속으로는 기성 세대 앞에서 '나 어떻게 해요~~' 하고 떼를 쓰는 사람들이다. 기개가 대단한 젊은 시인은 '아파트'를 받게 되자 안도하고 기뻐한다.
해 봐도 안 되고, 그러나 어떻게든 받아들이긴 해야겠고, 그래서 자꾸 홍상수 영화에는 좀 뜬금없어 보이는 처세와 관련된 경구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생각을 하자, 생각을',  '좋은 것만 보고 살자' 같은.
암튼 홍상수 영화는 계속, 잘, 살아가려고, 제정신으로 해 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의 영화인데, 사람들은 웃음 뒤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애를 쓰는지는 잘 안 보는 것 같다. 그걸 보게 되면 아주 웃기는 장면에서 코끝이 시큰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의 다음 영화가 늘 기다려지는 것 같다.

'사랑'의 본질은 다르지 않겠지만, 그것을 행할 때 그 재료와 방식은 그 사람이 속한 사회의 물질과 관습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사회에 입사하려는 사람에게는, 다른 말로 '가식'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 물질과 관습의 더께를 받아들이는 것이 요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본질은 혁명과 통하기 때문에 주인공들이 그토록 사랑을 찾아헤매는 것도 같다. 술을 잔뜩 먹여 놓고는 혹시 그 본질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매번 기대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술을 마시는 순간에는 어떤 비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게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문제는, 술에 취하는 것은 잠시이지만 곧 아침이 오고, 삶은 길다는 것.



+) 홍상수 특집 '씨네21'을 완독하고 나니, 그야말로 나의 감상이 '하!하!하!'다. 평론가 정성일 씨와 홍상수 감독의 대담이 무척 알찼다(?). 홍상수의 영화와 관련된 술어로 '깨끗하다, 맑다, 정직하다'가 나왔는데, 모두 어떤 느낌을 가리키는지 이해가 되고, 공감 &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