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61207 수. 학산도서관

은은 2016. 12. 7. 15:41

촌음을 다투어 해야 할 일이 있어 책더미를 짊어지고 올라온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잊어먹고 있었던 김혜리 기자님의 블로그에 들어가 두어 시간 넘게 시간을 거스르며 그간의 글들을 읽고,

새삼 알게 된 것, 글은

어찌되었든 환상을 믿는 힘으로 쓰여진다는 사실.

그것이 환멸에 대한 토로의 글일지라도.

문자를 적어 나가면서 보잘것없는 세계를 나의 이상에 걸맞는 세계로 바꾸는 노동과 즐거움, 투쟁.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벌거벗은 못난 세계에 굴하지 않으려는 자존심.

즉, 나의 존재의 아름다움에 대한 매순간의 주장.

세계에 잔인하게 절망한 이가, 그것에 대해 문자로 적을 때

글자의 사이마다 그 사람은 (현실 너머의 세계의 존재라는 의미에서) 신을 부르는 것이며, 신(에 필적할 만한 무엇이든)의 존재를 요청하는 것이다.

나를 넘어뜨리고 짓밟은 세계 앞에서, 그 세계의 방법과 형식으로써 이겨 주고 싶은 욕망에 걸려들지 말 것.

언젠가 절절히 체감하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지점.

그러나,

오랫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 와 화들짝 놀라는 몸짓으로 알게 됐어도 피톨 하나 두근대지 않는구나.

인식과 발견과 각성이 다른 나, 다른 세계로 이끌어 주리라는 기대와 희망이 눈곱만치도 생기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