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닌|황정은 소설|문학동네 2016
"아무도 아닌,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으로 읽는다."
속표지 다음, 차례 전에 적힌 문장이다.
일종의 헌사.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아무도 아닌' 사람들에 대한.
上行
양의 미래
상류엔 맹금류
명실
누가
누구도 가 본 적 없는
웃는 남자
복경
8편의 단편들이 모여 있다.
상행, 양의 미래를 읽었고, 상류엔 맹금류는 이전 어느 문학상 작품집인가 어디에서 읽었었다.
보잘것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보잘것없는 이야기를 보잘것없는 말과 표현으로 쓴 소설들.
간신히, 그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행위가 되는.
철학과 예술, 독서와 성찰을 통해 자아를 확장할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이 자아 확장은 실존주의와 형이상학을 통해 이루어진다.
관념 속에서는 나의 세계, 나의 우주라는 주장이 가능하고,
그러므로 우주에 떠다니는 먼지 한 톨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는 결론이 가능한 세계.
이를 바탕으로 한 윤리에서 타인의 고통에 책임감을 느끼고, 불의에 맞서고,
그런 의식과 행위가 다시 자기의 뿌리로 내려가 '뿌듯하고 충만한 실존'을 경험하게 하는 것.
이 행복한 실존의 경험에 전제되는 것이 있다면?
의식의 힘이 물질의 힘에 먹히지 않은 공동체?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의 우월성, 귀함을 의심하지 않는 공동체?
모든 것이 개인의 탓이 되어 버린 세계에서 가난은 개인의 무능함으로 돌려지고,
개인은 반성적 자기 성찰을 당하고, 점점 발언을 할 수 없게 주눅이 들고,
발언뿐 아니라 생각을 하는 것조차 주제넘는 짓으로 매도당하고,
현실적 무능함을 상관하지 않는 합의된 윤리가 부서져 버린 자리에서는 가난한 개인은 어떻게든 자신을 용서할 수도, 확장할 수도 없게 되는 것.
그 단선의, 힘없는, 찌그러든 목소리나마 기록하는 것(이전 같으면 미학적 화려함으로 현실의 왜소함을 보상할 수 있었지만, 이미 자기 검열에 걸린 화자들은 자신들이 주제넘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발화하는 것을 그만둔다.).
황무지를 그려 놓는 것.
어느 지하 셋방의 허름한 사람들의 쭉정이 같은 말들을 종이 위에 겨우 붙들어 둔 것 같은 그녀의 소설.
고발도, 항의도, 반격은 더더욱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