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27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1. 눈길 닿는 곳마다 절집을 하나씩 짓고도 남을 것 같은 고양된 간절함의 순간을 지내기도 한다.
끼니때마다 밥 국을 담는 그릇들을 설거지하며. 그러면 닳은 밥그릇 국그릇이 원효가 들어 고인 물 마신 해골바가지 쪽으로 조금 밀려가는 것도 같다.
그 꽃나무가 있어 여름 견딜 만한 배롱나무꽃이 한창이다.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도 그럭저럭 몇 그루 있지.
아침부터 가는 커피집마다 푸대접을 받고, 빌딩 앞 화단가에 우두커니 앉아 있어 보았다.
일상에서 조금 벗어나 앉아 있었던 것인데 숨이 잘 나왔고.
2. 타임라인에서, 남녀 차별의 문제는 서사물의 시공간에 대한 남녀의 차이로도 나타난다는 통찰을 접했는데,
(조한혜정 선생님) 남자는 시간을 오가며 서사를 주도하고 경험하지만 여자는 공간에 갇힌 채 사물화된다는 것이다.
이 한 문장을 빌미로 생각이 생각을 낳았는데,
우리가 계급을 말할 때 표면적으로 부의 정도를 기준 삼아 생각하지만, 그것은 출발점일 뿐이고, 그로부터 아주 많은 의식의 영역에서 계급이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위와 같은 시간의 문제 역시, 남자와 여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부유한 계급은 그들만의 시간의 흐름을 살아간다. 무엇을 기준 삼아 자신들의 시간을 계량하거나 변형시킬 필요가 거의 없다.
자기 시간을 쪼개고, 누군가의 시간에 끼워 맞추어야 하는 것은 여자,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문제는 잘 풀어서 설명해 보고 싶은 문제인데 아직 때가 아닌 듯.
예를 들어, 주부로서 내가 경험하는, 가장 순수한 단위 그대로로서의 일상 시간과
내가 꾸리고 간직하고 있는 나의 관념 속 시간은 포개어져 있고,
그 두개를 때때로 번갈아 운용하는 일에 관하여.
3. 친애하는 타임라인의 여성 동지들은 시간의 가장 말초적인 표면 위에 떠서 흘러가거나, 그런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무도 '권위를 인정 받은 자기만의 시간 창고' 따위는 갖지 못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이것이 포즈일지라도, 일단은 여성이 지금 낮은 계급, 약자이니 그들이 '자기만의 역사적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은 그들 연대의 동력이 되는 부분일 것이다. '자기만의 역사적 시간'도 명백히, 고급한 사유 재산이기 때문이다.
가끔, 차별의 문제가 바람직하게 해결된다면 여성이 지금보다는 권력에 가까이 가게 될 것인데, 그때 그들은 어떻게 할까를 상상해 보게 된다.
슬프게도, 별로 낙관적이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