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1 광화문 스타벅스
1. 세상 시끄러운 장소로는 '친정 엄마 옆'과 '시어머니 옆'만한 데가 없다.
신경전을 벌이고 나와 생각해 보건대, 같은 나이의 모르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처럼 왜 친정 엄마는 생각할 수가 없는가.
그녀가 노인이라는 사실, 약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일이 불가능하고(순간에는), 그 사실을 떠올린다 해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고, 늙어 가는 사람에게 변화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며,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영원히 모르는 부분이 저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낭만적 상상을 부풀려 신비감을 즐기도록 해 볼 것.
2. 더위에 넋이 나가 엄벙덤벙 페이지만 넘겼던 <모든 것은 빛난다>를 앞부분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 보고 있다.
'심장 박동과 박동 사이에 들어가 벽을 세우고, 거기서 아예 거주하려는 태도'가,
현대의 권태와 불안과 분노에 가득 찬 일상을 의미 있는 것, 행복한 것으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고 말할 생각은 아니다. 저와 같은 노력과 의지로써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경험하려는 욕망, 그것은 본능적인 것일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일생)에 대한 사랑인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
속도가 붙지는 않겠지만 한동안 가방에 넣고 다닐 생각.
3. 조해진의 장편 <여름을 지나가다>는 다시 보니 2015년에 발간된 책이더군.
'기획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쌍용차 해고와 싸움에 대한 소설을 쓰자,고 기획하고 플랜을 세워 써 낸 듯.
다 읽고 나도 인물들이 도저히 현실감이란 없고, 평면에 누워 있는 유령들인 것 같은 이유의 하나일 수도.
주제와 소재를 정하고 한 편의 소설을 쓴다는 것은 소설 기술자에게는 낯설지 않은 작업이겠지만, 독자 역시 기획 상품을 받아 든 듯 겉돌게 된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 보지 않았다.
4. 영화 <내사랑Maudie>을 봤다.
외롭고 낮고 쓸쓸한 사람들의 생애와 사랑?
병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단단한 자아에서 위안을 얻어도 괜찮은 걸까. 예전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의 조제를 볼 때처럼,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그런 반성적 생각을 또 해야만 하나 싶었고.
쓸데없는 사람들(가족, 친척, 이웃)이 너무도 안 나오는 것이 말할 수 없는 위안과 평화를 주었고,
쓸데없는 집과 자동차가 안 나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사람의 어떤 슬픔과 불행은 그것만을 달랑 대자연 속에 옮겨 놓을 수 있다면 훨씬 견딜 만한, 누추하지도 않은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검증해 보려고 모드의 집이 있던 풍경 속에 종각역의 노숙자들, 장애 아이와 가족을 대입해 보았다.
너무 가난한 사람들도 대입해 보았다.
훨씬 나았다.
사랑을 과장하지 않아서 편했고(그와 그녀는 둘 다 '필요에 의해' 동거 생활을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하고, 가짓 수도 많지 않다.
입을 다물고 울음을 참기 어려워 입을 벌리고 숨을 쉬며 봤다.
엉엉 운 곳은 모드와 에버렛이 눈 속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모드가 다리를 지나지 못하고 '더는 못가겠어'라고 말하는 장면.
그녀가 민트색 페인트를 발견하고 손가락에 묻혀 보는 것 같은 아무렇지도 않는 데서도 눈물이 나더군.
좋은 영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호들갑을 떨지 않으면 진짜 그녀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