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장석주 지음, 달, 201704

은은 2017. 11. 7. 11:03

햇반과 여름옷을 보내 달라고 한 택배 박스에 이 책을 함께 부탁한 이유는,

1989년 무렵의 청하 출판사와, 그 무렵 경희대의 일단의 시인들(하재봉, 이문재, 안재찬 등)의 어떤 동인 이름과

청하 출판사에서 나온 그들의 시집, 한글 9pt정도나 될까 하는 작은 서체와 얇은 두께의 시집들과

'구월의 이틀' 같은 서정과, 무엇보다,

그렇게 어두운 곳에서 혼자 더듬더듬 문학 속으로 기어다니던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

(찾아냈다. '시운동' 동인들. 안재찬, 하재봉, 박덕규, 이병천, 한기찬, 남진우. <그리고 우리는 꿈꾸기 시작하였다>)

 

장정일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장석주 씨도 정규 과정(번듯한 대학)을 거치지 않고 문단에 등장한 사람으로 알고 있고,

그당시의 시국이 시국이었던지라 이 일단의 낭만주의자들은 한쪽에서 욕을 먹으며 존재했던 것 같은데(저 동인들 중 한 사람이 후에 '류시화'라는 필명으로.),

그때 '청하'라는 출판사의 분위기가 지금 생각하면 홀로 대단한 바도 있었다 싶고, 오쇼 라즈니쉬나 니체의 책 같은 걸 출판했었지.

세계시인선은 참 보물이었다.

로트레아몽, 테드 휴즈, 옥타비오 빠스 등을 모아 지금 시집보다 큰 판형에 하얀 표지로. 그때 사 모았던 걸 지금도 소장하고 있다.

 

그리하여서, '그 시절'이어서 돌아가 보고 싶었던 것.

 

어떤 허술함들을 만나게 될 것을 짐작했고, 과연 그렇지만,

나의 문학은 원래 이리 무르고 모자라고 허술한 것으로 시작되었으니까.

(예를 들면 '공지영류'의 에세이가 나의 정직한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읽고 있는 <아픈 몸을 살다>의 문장들과 비교해 보면, 참, 참,이지만

어쨌든 나의 한시절, 원주여고, 전학생, 야간자율학습 시간의 방황들, 독서실, 전교조, 저녁 시간 학교 앞 서점들의 서가를 뒤지며 말도 안되고 맥락도 없는 '소문'들을 사들이던 시간들...

그때 함석헌 전집, 토지, 강석경, 백년 동안의 고독, 김용옥, 카잔차키스, 말도 안되게 형편없는 컬러와 판형으로 인쇄된 서문미술문고, 쇼펜하우어...

그 길로 여기 와서 내가..., 그런 심정.

 

예가 아니지만, 어쩐지 이 끝에 꼭 옮겨 적고 싶은 문장이 있다.

"표현할 수 없는 통증 속에서 아픈 사람은 고립되며, 입을 다물면서 추방되었다고 느낀다. 어떤 형태로든 표현된 말은 다른 사람을 향한다. 곁에 아무도 없을 때라도 그렇다.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한다는 뜻이다."

-<아픈 몸을 살다> 59p

 

 

*덧붙임 : 알았다. 저자는 파스칼이나 몽테뉴, 헨리 데이빗 소로 같은 수필을 쓰고자 했던 것이다. 두루뭉술한 내용과 무엇보다 그 문체가 무척 낮익었던 까닭은 그것이다. 그리고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다른' 스타일의 글을 쓰는 하루키를 조금은 선망한 것이다. 저자의 나이를 떠올리며, 지독한 염세와 비관을 쏘아대지 않는 것에 약간의 점수를 주겠다. 허나 이토록 파괴된 세계를 어찌 그 뜬구름 같은 거미줄로 얽겠는가. 그는 열심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과 자연과 시간과 인생을 주제로 글을 쓰지만 그의 글 속에 나오는 자연과 시간과 인생은 지금 이 세상에는 없는 것들인데... 착한 기만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