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량해진 청와대 옆을 지날 때
자하문 고갯길을 넘어가고 싶은 날이 있어
언덕길로 운전할 때가 있다.
청운중학교 후문 지나 신교동으로 빠지는 삼거리 지나
청와대 앞으로 좌회전 하기 전
오른쪽에 고목 한 그루가 있는데
줄기에 잔가지들이 꼭 겨우살이 모양으로 자라나 붙어 있다.
이즈음엔 늘 수묵화 속 나무처럼 짙은 먹색인데, 어느 날은 그 뒤로 연회색으로 흐린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신호를 기다리며 그 나무를 올려다 보는데 저절로 이런 생각이 났다,
이제 제발 이 무거운 '나-에고' 를 싹 걷어내고
맑고 또렷하게
저 나무의 아름다움만 느낄 수 없겠냐고.
너무 오랫동안, 패배자 자아-에고를 뒤집어쓰고 살아와서,
냄새 나고 더럽고 해진 누더기 자아를 끌고다니며 한순간도 내려 놓지 못한 지 오래여서,
저절로 그런 기도가 흘러나왔다,
이제 제발, 저 하늘과 저 나무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고.
기억할 만한 순간이었기에 기록해 둔다.
할 만큼 한 거라고,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기에 그만큼 오래 걸린 거라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럴 수 있겠지.
그런데 그냥 이런 것 같다, 어느 순간,
자책과 후회와 괴로움과 우울 같은 게 너,무, 지겨운 것이다.
그냥, 너무 오래 즐겁지 못했단 깨달음이 확 오는 것이다.
정말, 너무, 오래, 괴롭지 않았니? 이제 그냥
인과와 논리와 반성과 교훈과 복수와 도덕적 우월과 정신 승리와 타인의 인정과 몇 천 번의 검산과 인식의 도약과 감각의 비상과 새 삶의 발명과 인간성의 창조와 그런 거 다 모르겠고,
젠장 다 됐고,
그냥 좀 기쁘고 즐겁고 싶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친구들을 만나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서 크게 웃고 싶다!
안 될 거 있어?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