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의 방황과 막걸리
일어나니 봄비가 와서,
집에 원두가 떨어진 핑계를 찾아 sfc몰에 나갔다.
가는 길에 수원으로 출근하는 집사람을 시청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과테말라 원두 200그램, sfc몰 지하 2층 'CBTL'의 블렌드 커피 한 잔.
부드러운 미소 같은 커피, 역시 맛있었다.
정처가 없이 운전대를 잡고 이리저리 모색하다 이런 비 오는 날 강아지와 둘이 있는 집에서
문학이나 철학 말고, 훌훌 넘겨 읽을 사회과학서나 기행문을 읽자 하고
유시민 작가의 '유럽도시기행'을 떠올렸고,
들어선 길에서 가장 가까운 청운문학도서관을 찾아갔는데
이 비 오는 날에도 도서관 주차장이 꽉꽉 차있어 기분이 좀 상했다.
분명 도서관에 온 차들이 아닐 테다.
공원 지나 경사진 길에 주차하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연두가 일렁이는 숲이 비 맞는 걸 봤다.
차를 돌려 정독도서관을 가 '인사자실'의 사회과학 서가에서 몇 권의 책을 빌렸다.
가을에는 어떤 세상이 돼 있을까. 이 나라의 정치 사회 현실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을까.
내가 우리 강아지보다 오래 살까.
늘 긴 변명이 달렸던 나의 배우자와 내가 출산한 아이,
지금, 그이들에 대해 '유일무이'의 감상과 자세를 갖추는 건 내 의지가 아니라 세월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 감상과 자세는 사실이다.
위가 투정을 부리는지, 속이 메슥거리는 증상이 계속 된다. 심하지는 않고, 원체 속탈이 없이 살던 체질이라 좀 이상하긴 하다.
구석구석 야만의 적나라가 펼쳐지고, 억울하고 아까운 죽음들이 넘쳐난다. 어제는 그 중 전세사기를 당하고 자살한 사람들 생각을 했다. 더구나 젊은 청년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진짜 내 감정, 진짜 내 생각, 내 의지, 내 판단대로 말 한 마디, 걸음 한 걸음 하지 못하고, 이렇게 어영부영하다 죽을 셈인가.
어느 지점 이후로, 어떤 것도 수용하지도 인정하지도 않고, 이렇게 '극을 하며' 살다가 말이다.
어느 무대건 무대 뒤가 있는 법인데, 언젠가부터 나는 그 '무대 뒤'를 폐쇄해 버린 것 같다는 것이다.
진실한 '관계' 불능, 완전히 무능력한 사람이 됐다.
나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빗속에 운전을 하며 어느 순간 '오늘, 2025년 4월 22일' 날짜를 한번 새겼다.
돌아와 봄나물에 결국 막걸리를 한 잔 마시며
세상에 와 막냇동생을 만났구나, 남편과 딸과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났구나 싶었다.
그 정도가 '만남'이라 하겠단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