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37

20260629

1.2020년에 (아마 다시) 출간한 김도연 소설가의 산문집 을 꺼내 몇 쪽 읽다 갈수록 심란해져 덮고 책꽂이에 꽂아 버렸다.이 심란은 분명 그 작자의 도저한 '순진함'이 피워 낸 것이다.2.공동생활 중인 한 사람이 출장으로 집을 비운 것이 얼마만인가!눈을 뜨고 부터 세상이 이렇게 적요하고 제정신일 수가 없다.오늘과 내일은 종일 나 혼자를 생각하며 살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밀린 할 일이 있다면 모두 수요일에 하게 될 것이다. 걸레 한 번 빠는 일까지도.3.드디어 오롯이 나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의 질감과 풍경의 빛을, 누릴 수 있는 수단이 고작 이 문자들뿐이라니.진하게 화장을 하고 원색의 옷감을 잔뜩 써서 지은 옷을 입고 끈적한 조명이 습한 여름처럼 텁텁한 바에 가 한 잔 하고 싶다.아무리 애를 써도 이제..

일기 2026.06.29

휘청

휘청 혼자 일하는 사무실로 출근한 남편이 거의 이십 년 전 파리 신혼여행에서 찍은 내 사진을 채팅방에 보내 왔다. 사진 속의 나는 뽀글뽀글한 짧은 파마머리를 하고 겨자색 패딩 점퍼를 팔에 걸치고 아이보리색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헤드폰을 낀 채 긴장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뒤로 멀리, 거의 점같이, 모나리자 그림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슬쩍 한 번 사진을 보았다. 사진을 들고 앞방을 노크하고 들어가 중학생 딸에게 보여 주었더니 ‘엄마! 너무 예뻤잖아!’ 너무 놀라 울먹울먹한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전하니 딸아이가 좋아할 줄 알았다는 답이 온다. 딸아이는 좋아서 울먹였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그로부터 한 며칠, 요즘은 그렇게까지 휘둘리지 않게 된 극심한 우울이 밀려들어 힘들었다. 사실 ..

일기 2026.06.13

제임스 테이트,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에서 3

애런 노박의 사건 내가 집에 돌아와보니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메시지가 이렇게 말했다. “애런 노박, 넌 죽을 줄 알아. 내 말 들려? 넌 죽었다고.” 그 남자의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애런 노박이 아니고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곤 알지도 못한다. 나는 경찰에 전화했다. 그들이 즉시 어떤 사람을 보냈는데, 그는 경찰관 로텔로였다. 그는 메시지를 여러 번 들었다. “당신이 애런 노박이 아닌 게 확실한가요?” 그가 두 번이나 물었다. “내 이름은 오언 놀란이에요.” 내가 말했다. “음, 그 이름이 내게는 애런 노박과 아주 비슷하게 들리는데.” 그가 말했다. “이건 정말로, 분명히 실수일 겁니다. ” “그러나 이 남자는 애런 노박을 죽이려고 해요. 당신이 이 사건에 어떤 조..

수집 2026.06.10

20260529, 여기는 어디일까

백인 남자 두 명의 두껍기 비슷한 책을 옆에 꺼내 놓고그거 재미있을 거 같았는데, 또 한 권은 .꽤 된 것 같은데, 이렇게나 집중을 못 하게 된 지가...최근 집중해서 한 일?예전 드라마 몰아 본 것, 극장 가서 본 것, 알렉스 카츠 전시 본 것, 간신히 유튜브에서 타르코프스키 영화 끝까지 본 것, 또 뭐가 있었던가? 생각나지 않네..집중불능자가 된 것도 그건데, 이토록이나 무슨 글이든 단 한 문장도 쓰여지지 않을 것 같은 상태...단순한 일기조차도...뭐 쓸 게 있나...?의 상태다.이건, 여기는 어디일까...

일기 2026.05.29

리디아 데이비스 작품집 <불안의 변이>에서

얼마나 힘든가 How Difficult 여러 해 동안 엄마는 내가 이기적이고, 부주의하고, 무책임하고, 기타 등등 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자주 짜증스러워했다. 내가 내 주장을 말할 때면 엄마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엄마는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했지만 여러 해가 지나도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면 달라졌다 해도, 정말 달라졌는지 확신할 수 없었는데, 왜나하면 엄마가 "이제는 네가 이기적이지도, 부주의하지도, 무책임하지도, 기타 등등도 하지 않구나"라고 말하는 순간이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왜 너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지 못하니, 왜 너는 하는 일에 집중하지 않니, 왜 너는 할 일을 기억하지 못하니?" 나는 짜증스럽다. 엄마에게 공감한..

수집 2026.05.18

최정례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에서

흔들렸다 꽝 소리가 났다. 3층 아파트가 흔들렸다. 뭔가 무너지고 있었다. 올 것이 온다더니 틀림없었다. 밖으로 튀어나갔다. 아무도 없었다. 맞은편 아파트에서 한 여자가 베란다에 나와 흰 빨래를 탁탁 털어 널고 있었다. 비명 같은 게 들렸다. 현관에서 한 남자가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무슨 소리 못 들었나요? 아니요. 이상하네, 꽝 소리가 났는데…… 그 남자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햇빛이 찬란했다. 아무 일도 없다니. 매미가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길을 건너 그늘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변했는데 놀랍게도 티롤이라는 까페가 아직도 거기 있었다. 들어가 뭔가를 마시려는데 창가 쪽에 아는 얼굴이 있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수집 2026.05.11

20260505

20260505 오십이 되는 일은 세상의 그림자가 다 사라지는 것과 같다.날씨도 없어지고, 당신의 세계에는 마트 계산원, 고객센터 전화 상담원, 주차장의 정산기, 주민센터의 창구 사무원만 남겨진다.얼굴을 아는 것 같은 아래층 이웃과 말할 때가 있지만 곧 마트 계산원과 하는 대화를 주고받게 된다.연휴를 맞아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어떤 목적지를 입력하지만 당신이 모르는 것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고, 오월의 산야는 통과해 가야 하는 지도상의 거리일 뿐이다.

일기 2026.05.08

제임스 테이트 시집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2

인터뷰 미스터 파젠다라는 한 남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 자기는 정보원인데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어떠한 질문을 받더라도 기꺼이 대답하겠노라고 했다. “당신은 제럴딘 모르간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분을 아십니까?” 그가 말했다. “글쎄요, 그냥 몇 번 그녀를 만났을 뿐인데요.” 내가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은 그녀가 나라를 기꺼이 배반할 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가 물었다. “음, 그래요. 내 생각에 그녀는 기꺼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말했다. “당신은 그녀가 살인을 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가 말했다. “그녀에 대해 약간 아는 바에 의하면, 내 생각에, 그녀는 확실히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말했다. “그녀가 대통령을 해치기도 할까요..

수집 2026.05.07

제임스 테이트 시집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 1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 72쪽, 제임스 테이트/최정례 역 기갈 우리 사무실에 프레스턴 쿠퍼라는 새 매니저가 왔다. 내가 보기에 그는 새로운 종류의 족속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마음에 든다. 그는 매우 저자세인 척한다. 사실 어떨 때는 그의 야망은 한껏 감긴 용수철처럼 극에 달한다. 어제 그는 내 방문을 열고 머리를 디밀더니 늘 하던 대로 이런 말을 했다. “어떻게 돼 가고 있지, 모트?” “지금 볼티모어와 통화중이에요.”내가 말했다. “제가 그들에게 말했어요. 내 계산에 의하면, 그쪽 물량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요.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보면, 우리가 인디애나폴리스와 세인트루이스, 시카고와 캔자스시티에서 시장을 선도하고 있어요. 밥 바일리가 방금 전화해서 트라이스타가 미네아폴리스와 세인트폴..

수집 2026.05.06

20260418_1

20260418_1 ‘허기’를 느끼고, 음식을 많이 먹으며, 무분별하게 무분별한 것들을 먹는다. 한동안 거의 날마다 다니던 수영을 끊어서인지, 갑상선에 이상이 생겨서인지, 꽤 오래 먹어오던 정신과 약을 안 먹고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음주도 있다. 그런데 늘 해오던 음주 습관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 결과적으로 항상 몸이 부어 있는 것 같고, 얼굴 모양이 변하고 있다. 몸 또한 무분별하게 살고 있는 사람의 형상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그리고 입안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시력도 더욱 떨어지고 있다. 아, 쓰다 보니 이것은 단지 노화가 한 단계 더 진행되는 중인 것이다.4월18일의 일기에 한 장을 덧붙이려고 한 이유는 ‘마음의 평화’를 적어 두고 싶어서다. 지금 드디어 ‘마음의 평화’를 획득한 상..

일기 2026.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