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는 많이 컸습니다
-삶은강냉이
요즘 저잣거리에선 강냉이 장사가 화제입니다. 꾀죄죄한 남자가 하루 종일 팔아도 팔지 못하고 멀거니 앉았다가 그냥 싸들고 가던 그 자리에 아주 조그만 여자애가 와서 생강냉이도 팔고 삶은 강냉이도 팝니다.
옥자 아버지는 아내가 아파서 약값이라도 마련하려고 강냉이를 팔러 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사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옥자 아버지는 살림을 잘하던 옥자 어머니가 아파서 수발을 들어주지 못하자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쉬운 줄만 알았던 살림살이가, 밥도 어렵고 빨래도 어렵습니다. 사는 것이 아주 고생스럽습니다. 자연히 옥자 아버지는 아주 꾀죄죄하게 변했습니다. 아무리 파는 사람이 꾀죄죄해도 생강냉이를 사다가 껍질을 까서 삶으면 되는 것을, 사람들은 옥자 어버지의 외모만 보고 야속스럽게 한 사람도 사주질 않습니다.
돈을 마련할 길이 없습니다. 그나마도 올강냉이 한밭 자리 심은 것이 잘되어서 팔면 약값을 마련하겠다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옥자 아버지는 20리 길을 무거운 강냉이 자루를 도로 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당가에 쏟아놓고 그 옆에 하염없이 주저앉아 한숨을 쉽니다.
올해 열한 살인 옥자는 낙심하는 아버지를 돕고 싶습니다. 어떡하든지 어머니를 살리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강냉이를 시장까지만 져다 주면 자기가 팔아보겠다고 졸라서 강냉이 장사로 나섰습니다.
어린 옥자는 마음을 단단히 다집니다.
혼자서 "강냉이 사요! 강냉이 사세요~. 맛있는 강냉이가 왔어요.' 자다가도 연습을 해봅니다.
막상 시장 바닥에 앉으니 눈물부터 납니다. '울어서는 안 돼. 기죽어서도 안 돼. 나마저 강냉이를 팔지 못하면 아버지도 어머니도 살릴 수가 없어.'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집니다. 옥자는 자기가 강냉이를 잘 팔면 어머니의 병을 분명히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옥자 아버지는 멀찌감치 숨어서 강냉이를 파는 옥자를 바라봅니다. 사람들이 옥자 아버지를 보면 또 강냉이를 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옥자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눈물이 솟지만 아닌 체하고 팝니다. 그것도 아주 기분 좋게 팝니다. 누구든지 강냉이를 사러 오면 항상 큰 것으로 골라 줍니다. 끝까지 큰 것만 골라 줍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금방 다 팔았습니다.
"야야, 삶은 강냉이는 없나?"
내일은 삶아서 가져오라는 아줌마들이 많습니다.
옥자는 빈 광주리에 자루를 담아 이고 갑니다. 아는 보이지 않고 광주리만 공중에 떠가는 것 같습니다. 옥자 아버지는 옥자의 광주리를 받아 지고 용하다는 '함약국'에 가서 한약 두 첩을 지었습니다. 함약국 의원은 환자가 오지 않았으니 먹어보고 차도가 있으면 더 지어가라고 합니다.
옥자는 아버지를 도와 저녁을 하고 한약을 다립니다. 팔러 갈 강냉이도 베어오고 아주 분주해졌습니다. 옥자는 한잠 자고 일어나 어두컴컴한 벜에서 난생처음 아버지와 강냉이를 삶습니다.
"옥자, 니 솥뚜껑을 열어 보지 말그라."
옥자 아버지는 강냉이를 삶다가 소죽을 주러 갔습니다.
옥자는 난생처음 삶은 강냉이가 궁금해서 솥뚜껑을 뒤로 밀었습니다.
"앗! 뜨거워."
뜨거운 김이 확 몰려 올라오면서 팔목 위에서 팔꿈치 사이까지 살가죽이 시뻘게졌습니다.
옥자는 "아이, 뜨거워. 아이, 뜨거워." 팔딱팔딱 뛰면서 벜을 뒤집어엎고 엉엉 웁니다.
벜으로 난 쪽문으로 옥자의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옥자가 큰일이 난 모양인데 아무리 일어나려고 애써도 옥자 어머니는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소죽을 주고 온 옥자 아버지는 "그놈의 강냉이가 아 잡겠다."고 소리치고는 옥자의 팔을 물동이에 담가 화독을 뺍니다.
아버지는 "솥뚜껑은 옆으로 열어야지. 앞에서 뒤로 밀면 큰일 난다. 불을 치우고 난 다음이라 그만하지, 끓을 때 뒤로 열었으면 오늘 팔이 아주 날아갈 뻔했다.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다"라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강냉이 장사입니다.
처음에는 "너, 몇 살이냐?" 물으면 "열한 살이오." 모기 소리만 하게 대답하고 눈물이 뚝 떨어지고, 엄마는 어디 가고 네가 강냉이를 파냐?" 물으면 "어머니는요, 많이 아파요." 그렁그렁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 같던 아가 요즘은 아주 능숙하게 강냉이 장사로 변했습니다. "강냉이 사세요~. 아주 맛있어요! 요즘은 강냉이가 연하니 물은 강냉이의 반쯤 붓고 당원도 조금 넣고 소금도 조금 넣어야 맛있어요." 삶는 법도 가르쳐줍니다. "삶은 강냉이도 있어요~." 조그만 손으로 삶은 강냉이 두 줄 사이에 작은 창칼을 아슬아슬하게 넣어 손가락 길이만 하게 강냉이 알을 따서 '맛을 좀 보시라'고 사람들이 모이면 나누어 줍니다.
강냉이를 팔다가 틈틈이 책을 들여다봅니다.
"너 이름은 뭐냐?"
"옥자요."
"너 학교는 안 다니냐?"
"아니요, 강냉이 다 팔면 학교 가야지요."
"늦었는데 이제 뭔 학교를 가나."
"선생님이 늦어도 좋으니 오늘 중으로 학교에 오라고 했어요."
"이 아가 뭔 소릴 하는 거여."
어른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합니다.
옥자네 선생님은 일이 있으면 일을 하다가 늦어도 오고 종례 시간이라도 좋으니 결석하지 말고 학교에 왔다 가라고 하셨습니다. 외딴집에 사는 옥자가 늦게라도 학교에 오면 숙제도 알 수 있고 오늘 무엇을 배웠는지 알 수 있어서라고 합니다.
옥자 덕분에 시장 사람들도 부지런해졌습니다. 시장 사람들은 옥자의 강냉이를 얼른 팔아 학교를 보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챙기고 옥자가 빨리 강냉이르르 팔고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늦었는데도 강냉이가 남아 있으면 떨이로 사서 이웃과 나누어 먹습니다.
옥자가 강냉이를 다 팔 때까지 숨어 기다리던 아버지도 이제 강냉이만 져다 주고 집에 가서 아픈 옥자 어머니를 돌보고 일을 합니다.
용하기로 소문난 함약국의 약을 여러 번 달여드렸는데도 옥자가 보기에 어머니는 별 차도가 없습니다. 약이 효험이 있으려면 한 첩만 먹어 봐도 안다고 합니다. 함약국은 "오늘은 다른 약 처방을 써보기로 했으니 한 첩만 가지고 가서 달여드려보고 내일 오라"고 했습니다. 이 약이 효험이 없으면 다른 약국으로 가보든지 병원으로 가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옥자는 얼른 저녁 준비를 하고 화롯불에 약을 달입니다. 약탕관에 약 한 첩을 넣고 물을 7부쯤 붓습니다. 물이 약 무거리 위에 자질자질 할 때 내려놓았다가 따뜻할 때 짜 드려야 합니다. 옥자는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옆에서 지키며 온갖 정성을 다해서 달입니다. 조금만 더 달이면 될 것 같습니다.
옥자는 약탕기 옆에 앉아서 어느새 꼬박 잠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빠작빠작 소리가 나며 타는 냄새가 납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약탕기는 불이 벌겋게 붙어서 연기가 퍽퍽 나고 있습니다. 급한 마음에 물을 한 바가지 부었습니다. "치지직 칙~." 잿불이 솟아올라 벜이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 약탕기가 아주 깨져버렸습니다.
옥자는 엉엉 웁니다. 생각할수록 타버린 약이 아깝습니다. 눈물이 그치질 않습니다. 옥자는 울고 또 웁니다. 골이 아픕니다.
옥자의 우는 소리가 오랫동안 이어지자, 옥자 어머니는 억지로 기어 나와 옥자를 달랩니다.
"옥자야, 애 많이 썼다. 한약은 금방 먹어서 수암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천천히 병이 나을 것이니 이제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를 하라"고 하십니다.
강냉이가 다 말라 이제는 더 팔러 갈 강냉이도 없습니다.
옥자 아버지는 누렇게 익은 찰강냉이를 꺾어다 강냉이가 풍덩 잠기게 물을 붓고 삶습니다. 한 시간 정도 푹 삶으니 밥알이 허옇게 튀어나온 것을 옥자 어머니에게 줍니다. 그렇게도 입맛이 없다던 옥자 어머니는 밥알이 허연 찰강냉이를 보자 "바로 이 맛이야." 하며 한 통을 다 드십니다.
여름이 가고 옥자는 많이 컸습니다.
(114-121)
*평창군 뇌운리 어두니골, 지나는 말들 속에서 한번은 들어봤을 동네 이름. 나 태어나 살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 멀지 않았던 옛날 이야기들. 읽다 눈물도 좀 빼고. 타이핑을 해 보니 첫머리부터 끝까지, 짜임새와 감정 흐름을 야무지게 매만진 글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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