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그늘

사진

은은 2025. 4. 27. 14:53

"...그는 이 기간 동안 엄마의 다섯 살 때 사진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그 순결한 소녀를 향해 한없이 빠져들었다. <애도일기>의 번역자인 김진영의 설명처럼 '사진은 말하자면 부재 속의 실재라는, 있을 수 없는 존재의 실존이 기술적으로 그러나 마술적으로 구현된 이미지'다. 또한 죽었으면서도 살아 있는 존재처럼 산 자에게로 귀환하는 유령 이미지다. 바르트는 사진을 통해 죽은 어머니의 현존을 경험했고, <밝은방>이라는 사진론을 쓰기 시작했다...."

-나희덕, <예술의 주름들> 120쪽,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를 애도한 방식과 글쓰기 부분

 

이 부분을 읽다가 나는 당연히 '아버지'를 떠올렸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사진을 본 적이 있던가, 일부러 찾아본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을 했다. 왜 제대로 아버지 사진을 찾아보고 들여다보지 않았나, 왜 아버지 사진 한 장을 간직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이어졌고,

그것은 아마 내가 (어느 지점 이후, 바로 그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내 인생에 벌어진 모든 일과 내가 내 몸을 데리고 처해 온 모든 현실을 한시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말하자면 나는 내 인생에서 쫓겨났고 나에게서 쫓겨난 것이다.

어쩌면 이제야, 

아버지의 사진을 찾아서 들여다볼 때가 온 것일까. 할머니의 사진도?...

너무 많은 일들이 이제는 흔적도 없이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 허상 속의 '패배'가 두려워 나는 미친듯이 나의 안과 밖을 다 집어던지고 고작 살아남아 왔다.

그러니, 지금 여기 앉아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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