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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대학 문턱에 들어선 초년생에게 대학은 진리와 자유의 공간이었고, 만 권의 책이었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문장이었고, 지적 갈증을 축여 줄 명강의였고, 사랑과 진리 등 온갖 좋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런 것들로 나만의 아름다운 비단을 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 베틀에 앉아 내가 꿈꾸던 비단은 한 뼘도 짜기 전에 무참히 중턱이 잘리고 말았다. 전쟁은 그렇게 무자비했다.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으니까 다른 인생을 직조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당초에 꿈꾸던 비단은 아니었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 본 길보다는 못 가 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못 가 본 길에 대한 새삼스러운 미련은 노망인가, 집념인가, 올해가 또 경인년이기 때문인가., 5월이란 계절 탓인가, 6월이 또 오고 있기 때문인가. 나는 누구인가? 잠 안 오는 밤, 문득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물은 적이 있다.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이다. 그 두 개의 나를 합치니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 다만 그 붕괴가 조용하고 완벽하기만을 빌 뿐이다.
박완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현대문학 2010, 25-26
이 앞 부분에서 선생은 스무 살에 겪은 원초적인 전쟁 체험을, 토해 내지 않으면 병이 될 것 같고 그때 죽은 사람들을 암매장한 것 같은 죄의식에서 생전 못 벗어날 것 같아 늦은 나이에 소설이라는 걸 써 보게 되었다고 썼다. 다른 산문에서 술회한 바에 따르면 선생은 휴전이 되기 전에 남편을 만나 사회의 외풍으로부터 보호 받고 많은 자녀를 낳고, '남들이 다 팔자 좋다고 알아 주는' 결혼 생활에 안착했으니, 선생이 첫 작품을 내기까지의 시간을 헤아려 보면 십육칠 년 세월을 기억을 품고 산 셈이다. 선생은 그 결혼 생활을 '속에는 누더기를 걸치고 겉만 빌려 입은 비단옷으로 번드르르하게 꾸민 것처럼 자신이 한없이 뻔뻔스럽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고 술회했다. 글쓰기에 대해서 '외침으로써 위로받고 치유받고 싶었다.'고 썼다.
나는 박완서 선생의 '깎쟁이 기질'이 부럽기도 하면서도 불편하여(경험상 그처럼 똑부러지는 깎쟁이들에게 늘 손해를 보면서 당해내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다.) 썩 가깝게 느끼지 못했다. 선생의 소설 속 여자 인물들의 처세나 태도를 보면, 어딘가 할아버지, 아버지, 오빠, 남편 등, 남자들의 기둥과 그늘이 넉넉한 집안의, 되바라져도 결국은 그 그늘 안에서 보호 받는 귀염둥이 고명딸의 지위를 누리는 듯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시종일관, 몰락하여 시대적 불행의 한가운데에서 찢길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는 고관대작의 집안,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에 대해서 너무도 당당한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기가 죽고 비위가 상한다. 나처럼 제 탓이 아닌 것조차 제 탓을 하며 자신을 보호할 줄 모르는 자존감 낮은 멍청이는.
굳이 사지 않아도 되었을 책을 샀다는 생각을 하지만, 위와 같은, 아주 솔직한 고백들은 두세 번 되짚어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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