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창문이 모두 깨져버린
재개발 지역의 집들은 햇빛 속에서도
자기 안에 몰두해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선 바람도 눈 없는 사람의 눈언저리를 닮아 간다.
여기에선 바람 또한 세계의 임시 존재일 뿐.
녹슨 외짝 문을 삐긋 열어논
라일락이 램프의 별로 밝혀진 외딴집엔
바람이 불었다가 끊기고
끊겼다가 불면서,
침묵의 소리를 띄엄띄엄 기척 없는
나직한 뜰 안에 풀어놓는다.
지나가는 행인 하나 없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
재개발 지역의 집들은
햇빛과도 같은 시간 속에서 내부로 눈을 돌려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자신의 상(像)을 빚느라 여념이 없다.
잃어버린 눈 안쪽에
스스로를 견고한 고독으로 채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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