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재우고 주로 93.1의 유정아의 밤의 실내악에서 정만섭 명연주명음반 재방송을 걸쳐 들으며 조금씩 읽은 책.
에필로그에서 얘기하듯,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쓸 때 서경식은 30대의, 살아갈 길이 보이지 않아 울분이 늪처럼 고인 백수 청년이었고,
<나의 서양음악 순례>는 50대의 교수이자 저술가로서, 죽음을 향해 가까이 가고 있는 사람이 쓴 글들.
서양미술 순례가 미술을 통해 서경식의 개인사와 철학, 시대의식을 술회한 것이듯, 이 책 역시 서경식의 방식 그대로, 음악을 통해 그의 개인사와 철학, 시대의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음악을 향유하는 양적 질적 규모가 감히 흉내낼 수 있는 경지가 아니기에 저와 같이 음악으로서 '삶'을 버무리지 않았다면 몇 장도 읽기 힘들었을 터.
읽다 책 귀퉁이를 조금 접은 부분.
음악의 폭력성을 이야기하는 부분 중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폴란드 여인 조피아가 등장한 부분.
아우슈비츠에도 여성 유대인 수감자만으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가 있었다고 한다.
구스타프 말러의 딸(? 정확하지 않으나 친족이었음)이 지휘자였고, 조피아는 거기서 무슨 악기인가를 연주했는데,
이 오케스트라는 곧 가스실로 끌려가 죽음을 당할 유대인들의 행렬 앞에서도 음악을 연주했다고 한다.
이 부조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조피아는 나찌 관리자에게 오케스트라를 그만두겠다고 했으나, 관리는 그만두든가 강제 노동을 하다 서서히 말라 죽어가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고 한다. 조피아는 결국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계속하겠다고 했고 그 순간 '저는 패배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녀는 파괴되었다. 종전 후 그녀는 음악을 듣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정하고 찾아간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 중 아우슈비츠에서 자주 연주하던 아리아가 나오자 그녀는 실신했다.
파괴된 여인.
잊고 있던 '소피'가 떠올랐고,
그녀들을 파괴시킨 것은 나찌라는 시대의 악이었지만, 마지막 순간 그녀들은 선택의 상황에 내몰렸고, 그 선택이 그녀들을 파괴시켰으나 그녀들을 선택의 상황으로 내몬 구조적 악은 지워지고 그녀들에게는 자신들 스스로가 선택했다는 사실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엄청난 자책과 스스로에 대한 절망이 그녀들을 치명적으로 파괴시킨 것이다.
파괴된 인간. 유적으로서의 폐허로 그 자리에 남아 부스러지는 것.
그 이외의 어떤 삶이 '가능'할까.
나는 왜 터무니없이, 이토록 극적인 두 여인의 파괴당한 인생, 파괴당한 내면 근처를 맴도는 것일까.
나는 도대체 나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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