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

황인숙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에서

은은 2016. 11. 24. 13:29

걱정 많은 날

 

옥상에 벌렁 누웠다

구름 한 점 없다

아니, 하늘 전체가 구름이다

잿빛 뿌연 하늘이지만

나 혼자 독차지

좋아라!

하늘과 나뿐이다

옥상 바닥에 쫘악 등짝을 펴고 누우니

아무 걱정 없다

오직 하늘뿐

살랑살랑 바람이

머리카락에도 불어오고

발바닥에도 불어오고

옆구리에도 불어온다

내 몸은 둥실 떠오른다

아, 좋다!

둥실, 두둥실

 

 

마음의 황지

 

아침 신문에서

느닷없이 마주친

얼굴,

영원히 젊은 그 얼굴을 보며

끄덕끄덕끄덕끄덕끄덕끄덕

칼로 베인 듯 쓰라린 마음

 

오래 전 죽은 친구를 본 순간

기껏

졌다, 내가 졌다,

졌다는 생각 벼락처럼

 

그에겐 주어지지 않고 내게는 주어진 시간

졌다, 이토록 내가 비루해졌다

 

졌다, 시간에

나는 졌다

 

 

**시도 시이지만, 이번 시집에서 시집 표4의 글이...

"거짓말, 엄살, 극단적 나태, 자기방기, 또 뭐가 있을까. 무능력, 이기심, 허세, 윤리적 우월감,

독선, 의지박약...... 그리고 이제 몰염치! 초등학생 시절 이래의 기억을 더듬으며 내 악덕의 목록을

꼽아본다. 그 악덕들의 발현 순간을 떠올리면 낯이 달아오르지만, 어떤 건 용서가 되고, 어떤 건

'할 수 없지. 그렇게 생겨먹은 걸' 고개를 저으며 받아들인다. 극복할 수 없는 건 몰염치의 순간들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내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는, 아아, 내가 저버린 존재들! '저버리다'라는 말을 뇌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리다. '저버림'은 원초적 감각이며 존재적 감각이다.

저버린다는 행위에서 주체와 대상이 꼭 상관있지는 않다.

'저버림'의 주체가 되는 건 그 대상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인데, 대상은 주체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차가운, 고적한 포기를 생각하면 울음이 차오른다. 저버린다는 건 '보고' 외면하는 것이다.

어떤 한 생명의 존재의지를 거절하는 외면. 삶의 기반이 허술한 사람들, 아예 그 기반이 없는 동물들.

내가 외면한 순간, 내가 저버려서, 절벽에서 떨어진 그 몸뚱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