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

올더스 헉슬리

은은 2011. 3. 7. 16:18

<기술의 진보는 通俗性을 가져다 주었다. 기술 복제의 가능성과 윤전기는 글자와 그림의 끝없는 복제를 가능하게 하였다. 학교교육의 일반화와 비교적 높은 임금은 책을 읽을 줄 알고 또 읽을 거리나 그림책 등을 살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대중을 만들어 내었다. 이들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거대한 산업이 생겨났다. 그런데 에술적 재능이란 매우 희귀한 현상이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에술적 생산의 대부분이 보잘것 없었던 이유도 이러한 현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예술적 생산에서 조야한 예술작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단지 그 숫자만을 한번 보더라도 이러한 사실은 곧 입증될 것이다. 19세기가 경과하는 동안 서구의 인구는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읽을거리, 볼거리는 나의 추측에 의하면, 적어도 20배, 어쩌면 50배 내지 100배로 증가했다. 만약 100만의 인구에 x명의 예술적 재능이 있다면 2백만의 인구에는 2x의 예술적 재능이 있을 것이다. 상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백년 전에는 읽을거리, 볼거리가 한 페이지 출판되었다면 오늘날에는 20페이지 내지 100페이지가 출판된다. 그러나 백년 전에는 한 사람의 예술적 재능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두 사람의 예술적 재능인이 있을 뿐이다. 물론 일반 교육의 결과로 옛날 같으면 그 재능이 펼쳐지지 못했을 수많은 잠재적 재능들이 오늘날에는 생산적이 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옛날에 한 사람의 재능이 있었던 데 비해 오늘날에는 셋 내지 넷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을거리, 볼거리의 소비는 재능있는 작가나 화가의 자연스러운 생산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들을거리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제적 번영과 축음기 및 라디오는 인구 증가에 이에 따른 재능 있는 음악가의 자연적 증가와는 전혀 걸맞지 않는 들을거리의 소비자를 만들어 내었다. 따라서 이의 결과로 모든 예술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보나 절대적으로 보나 조악한 예술 작품의 생산은 예전보다 훨씬 증가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오늘날과같이 과도할 정도로 읽을거리, 볼거리, 들을거리의 소비를 계속하는 한 이러한 상황은 그대러 지속될 것이다.>



'수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들  (1) 2011.03.23
남자들 시 두 편  (0) 2011.03.09
황인숙, <해방촌 고양이>  (0) 2011.03.06
클린트이스트우드, <hereafter>  (0) 2011.03.06
에릭 로메르, '겨울이야기'  (0) 2011.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