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
문태준
혼(魂)이 오늘은 유빙(流氷)처럼 떠가네
살차게 뒤척이는 기다란 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
이곳에서의 일생(一생)은 강을 따라갔다 돌아오는 일
꿈속 마당에 큰 꽃나무가 붉더니 꽃나무는 사라지고 꿈은 벗어놓은 흐물흐물한 식은 허물이 되었다
초생(草生)을 보여주더니 마른 풀과 살얼음의 주저앉은 둥근 자리를 보여주었다
가볍고 상쾌한 유모차가 앞서 가더니 절룩이고 초라한 거지가 뒤따라 왔다
햇곡식 같은 새의 아침 노래가 가슴속에 있더니 텅 빈 곡식 창고 같은 둥지를 내 머리 위에 이게 되었다
여동생을 잃고 차례로 아이를 잃고
그 구체적인 나의 세계의, 슬프고 외롭고 또 애처로운 맨몸에 상복(喪服)을 입혀주었다
누가 있을까, 강을 따라갔다 돌아서지 않은 이
강을 따라갔다 돌아오지 않은 이
누가 있을까, 눈시울이 벌겋게 익도록 울고만 있는 여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이
누가 있을까, 삶의 흐름이 구부러지고 갈라지는 것을 보지 않은 이
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
강을 따라갔다 돌아와 강과 헤어지는 나를 바라보았다
돌담을 둘렀으나 유량과 흐름을 지닌 집으로 돌아왔다
돌담을 둘렀으나 유량과 흐름을 지닌 무덤으로 돌아왔다
삶
김용택
매미가 운다.
움직이면 덥다.
새벽이면 닭도 운다.
하루가 긴 날이 있고
짧은 날이 있다.
사는 것이 잠깐이다.
하는 짓들이 다 헛짓이다 생각하면,
사는 일이 하나하나 손꼽아 재미있다.
상처받지 않은 슬픈 영혼들도 있다 하니,
생이 한번뿐인 게 얼마나 다행인가.
숲속에 웬일이냐, 개망초꽃이다.
때로 너를 생각하는 일이
하루 종일이다. 너 아니면 집을 나온 내가 어디로 돌아갈까
내 곁에 앉은
주름진 네 손을 잡고
한 세월 눈감았으면 하는 생각,
너 아니면 내 삶이 무엇으로 괴롭고
무슨 낙이 있을까
매미가 우는 여름날
새벽이다.
삶에 여한을 두지 않기로 한,
맑은 새벽에도 움직이면
덥다.
-<창작과 비평> 2011 봄호-
앞의 시는 3행에서 '이곳에서의 일생은 강을 따라갔다 돌아오는 일'이라고 세 번째 행 만에 초월자의 관점으로 날아올라 시공을 조망함으로써 서정을 유발하고, 끝에서 8행 '누가 있을까, 강을 따라갔다 돌아서지 않은 이' 이후에서 시인의 행위를 일반화함으로써 이 시의 정서가 보편타당한 것임을 강요하고 있다.
뒤의 시는 제목이 더 이상 상상할 것이 없는 관념의 최강자라 할 수 있는 '삶'인 것을 지나가다 보면, 시의 중반 이후에 느닷없이 호명되는 '너'.
이것이 내가, '젊지 않은 남성 시인들'의 시적 세계가 깔고앉은 세계관, 그들의 자세를 흠칫 놀라면서 돌이켜보게 만든다.
'너'라니! 이, 세상에서, '너'라니!
어느 적을 살고 계신 건지.
연민, 자기 연민의 과잉이 있는 대로 겉으로 넘쳐흐르는 시가 역겨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2000년대의 일군의 새로운 시인들(우선 젊고, 가방끈이 길고, 다른 토대 위에서 자라난)이 한국 시의 이 유구한 '징징거림'에 진절머리를 치며 새로운 시들을 쏟아놓은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리하여 이제 '순진한' 사람은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털끝 하나도 손해 보지 않을 '자기-개인'을 확실히 챙긴 사람이 아니면.
이건, 뭔가, 좀 엿같다. 모두가 고개 끄덕여 마지않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하여 혼자 엿같다고 손가락 쳐드는 기분이지만 그런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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