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숙자 옮김, 민음사
나방이 알을 스는 계절이니까 양복을 옷걸이나 벽에 건 채로 두지 말라고, 도쿄의 집을 나설 때 아내가 말했다. 와보니 아니나다를까, 여관 방 처마 끝에 매단 장식등에는 옥수수 빛깔의 커다란 나방이 예닐곱 마리나 착 달라붙어 있었다. 옆방 옷걸이에도 작지만 몸집이 통통한 나방이 앉아 있었다.
창문에는 아직 여름용 방충망이 쳐져 있었다. 그 망에 나방 한 마리가 꼼짝도 않고 매달려 있었다. 노송나무 껍질 빛깔의 작은 깃털 같은 촉각을 내밀고 있었다. 그러나 날개는 훤히 내비치는 엷은 녹색이었다. 여자 손가락 길이만한 날개였다. 맞은편에 펼쳐진 국경의 산들이 석양을 받아 이미 가을빛을 띠고 있어, 이 한 점 연녹색은 오히려 죽음과 다를 바 없었다. 앞뒤 날개가 서로 겹쳐진 부분만 짙은 녹색이다. 가을바람이 불자, 그 날개는 얇은 종이처럼 하늘하늘 흔들렸다.
살아 있나 싶어 시마무라가 일어나 철망 안쪽에서 손가락으로 퉁겨봐도 나방은 움직이지 않았다. 주먹으로 세게 치자, 나뭇잎처럼 툭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가볍게 날아올랐다. (77-78)
가을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그의 방 다다미 위에는 거의 날마다 죽어가는 벌레들이 있었다. 날개가 단단한 벌레는 한번 뒤집히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벌은 조금 걷다가 쓰러지고 다시 걷다가 쓰러졌다. 계절이 바뀌듯 자연도 스러지고마는 조용한 죽음이었으나, 다가가보면 다리나 촉각을 떨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들의 조촐한 죽음의 장소로서 다다미 여덟 장 크기의 방은 지나치게 넓었다.
시마무라는 죽은 곤충들을 버리려 손가락으로 주우며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을 문득 떠올리기도 했다.
창문 철망에 오래도록 앉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이미 죽은 채 가랑잎처럼 부서지는 나방도 있었다. 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도 있었다. 손에 쥐고서,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운가 하고 시마무라는 생각했다.
방충망을 떼어냈다. 벌레 소리가 눈에 띄게 시들해졌다.
국경의 산들은 적갈색으로 짙어져 석양을 받자 차가운 광물처럼 둔한 빛을 띠었다. (113-114)
유숙자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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