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책의 굉장한 도입부를 옮겨 보겠다.
"
자, 1973년의 아이오와 시티Iowa City에서 벌어진 어느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자. 도로 위를 달리는 낡은 포드 팔콘 컨버터블 차 안에 두 남자가 앉아 있다. 때는 겨울이고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고 폐부를 찌르는 차가운 혹한의 날씨에 손마디가 빨갛게 변하고 콧물이 질질 흘러내릴 지경이다. 그런데 이때 누구라도 목을 길게 빼고 덜거덕거리는 그 차창 안을 애써 들여다봤다면 눈길이 절로 쏠렸을 텐데, 두 사람 중 연장자이자 조수석에 앉아 있는 이는 그 추운 날씨에 깜빡하고 양말도 신지 않은 모습이다. 추운 줄도 모른 채 한여름에 어딘가로 놀러가는 고등학생처럼 맨발에 페니 로퍼를 신고 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 연장자는 얼핏 보면 청년으로 착각할 만도 하다. 호리호리한 체격부터 브룩스 브라더스의 트위드 재킷에 플란넬 바지를 받쳐 입은 옷차림,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까지 청년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적어도 주름으로 축 처진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동승자는 체격이 더 크고 우람한 서른다섯 살의 청년이다. 구레나룻을 짧게 기르고, 충치가 있으며, 해지고 팔꿈치 쪽에 구멍까지 난 스웨터를 입고 있다. 오전 9시도 채 되지 않은 그 시각, 두 남자의 차는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주류 매장의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정문 바로 밖에 점원이 보이고 그의 손에 들린 열쇠가 번득거린다. 조수석의 연장자는 점원을 보더니 차가 미처 멈춰 서기도 전에 문을 홱 열어젖히고는 비틀비틀 차 밖으로 나간다. 운전석의 청년이 먼 훗날 남긴 글을 그대로 옮기자면 그가 "매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쯤" 연장자는 "어느새 0.5갤런들이 스카치위스키를 들고 계산하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병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그곳에서 차를 빼서 나온다. 사실 두 사람은 앞으로 몇 시간 후면 아이오와 주립대로 되돌아가 각자의 강의실 강단에서 달변으로 학생들에게 감화를 줄 교수들로,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심각한 알코올 문제를 갖고 있다. 두 사람은 작가이기도 하다. 그것도 한 사람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작가고, 또 한 사람은 이제 막 떠오른 유망주다.
조수석의 연장자 존 치버 John Cheever는 소설 <왑샷 가문 연대기, <왑샷 가문 몰락기>, <불릿파크> 등을 비롯해 여러 편의 경이롭고도 독특한 작품을 써낸 작가다. 이제 61세인 그는 지난 5월에 확장성 심근증으로 병원으로 급히 실려간 바 있으며, 알코올로 인해 심장에까지 심각한 무리가 간 건강 악화의 징후를 보였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사흘 후에는 진전섬망 증상을 보이며 심한 난동을 피우는 통에 가죽 구속복이 입혀지기도 했다. 아이오와 주에서 얻은 일자리, 즉 이름난 작가 수업의 기간제 교수 자리는 더 나은 삶으로 가는 일종의 통행권이었을 테지만 일이 계획대로 술술 풀리지는 않았다. 당시의 그는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을 떠나와 방 한 칸짜리 아이오와 하우스 호텔에서 독신남이나 다름없이 살고 있었다.
운전석의 청년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는 그곳에서 막 교편을 잡은 신참 교수다. 그의 교수실은 치버의 교수실과 판박이며 치버의 방 바로 아래쪽에 있다. 두 방은 벽에 걸려 있는 그림까지 똑같다. 카버 역시 캘리포니아 주에 아내와 10대의 자식들을 놔둔 채 홀로 이 곳에 와 있다. 그는 오로지 작가의 꿈을 붙잡고 평생을 살아왔으나, 가혹하게만 느껴지는 환경 속에서 살아오기도 했다. 술에 빠진 지는 이리 오래되어 음주로 인해 피폐해져 가는 와중에도 용케 두 권의 시집을 써냈는가 하면, 꽤 많은 소설을 써서 그중 여러 편을 변변찮은 잡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
이 에세이는 '전기'로 분류되며,
존 치버, 레이먼드 카버 외에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테네시 윌리엄스, 존 베리먼의 알콜 전기를 추적할 예정이다.
* 이 작가가 이 에세이를 몇 년도에 썼는지, 그리고 원제가 무엇인지 확인할 것. '작가들의 이유 있는 음주' 같은 건 정말이지 잘못된 부제 같은데? 좀 세련되게 만드는 출판사에서 출판됐으면 더 좋았겠지만, 중요한 건 번역이니.
'수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현대문학 2017 (0) | 2017.10.31 |
---|---|
Love letter|2 (0) | 2017.08.14 |
Love letter (0) | 2017.08.11 |
토마토가 몰려온다, 최문자 (0) | 2017.08.08 |
|그때 그곳에서|3 (0) | 2017.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