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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

은은 2010. 5. 22. 18:16
'맞다, 시는 그런 거다' 그런 영화다.
조용히 바람이 플라타너스 이파리를 흔들고, 그 아래서 미자는 저녁마다 배드민턴을 칠 뿐이지만 그 아래 너무도 가차 없고 엄정한 칼이 있어 자신을 물어야 하는 것, 목숨 걸고 쓰는 것이 시라는 걸 말하는 영화.
스틸 사진 속 윤정희의 얼굴에 백건우의 얼굴이 보이는 건 나만일까(부부는 닮는다!).
미자가 그런 건지 윤정희가 그런 건지, 주인공은 연약한 듯하면서 단호하고 망설이는 듯하면서 정직하다.

미자가 들고 다니는 수첩이 있다.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그때그때 적으라고 시인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꽃을 보고 떨어진 살구를 보고 생각 나는 것들을 적는 수첩이다.
여중생이 떨어져 죽은 강가에 가 앉아 뭔가를 적어 보려고 수첩을 꺼냈을 땐 아무것도 쓸 수 없고 빗방울이 떨어져 종이를 다 적신다.
보상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회장님 댁에 찾아가 회장님과 마주 앉았을 땐 그 수첩에 '오백만 원만 주세요', '내가 왜? 지금 협박 하나' 같은 말들이 적힌다. 눈물 나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