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 25세 인턴을 마치고 전공의가 되려던 막내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그러하였다는 사실은 소문 속에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후, 그녀가 어느 수도원에 칩거하며 쓴 울부짖음의 일기(라는 사실도 소문 속에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2005년에 출판됐던 것을 작년에 재판을 했고, 그 판본이 이미 24쇄를 넘겨 인쇄됐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개정판에 붙인 큰딸 호원숙 씨의 짧은 글이 덧붙여져 있다.
컨디션이 엉망인 채로 읽기 시작했는데 졸다 깨며 아침까지 한번에 읽었고, 놀람과 외경의 마음이 들었다.
비통, 원통, 절망, 분노, 슬픔, 단장의 고통...그 매순간의 자신의 마음 속 상태를, 의식의 내용을, 파헤치고 끄집어내 샅샅이 써내려 갔다는 것.
곧 따라죽고 싶은 열망, 그러면서도 하루하루 일상이 흘러가는 순간의 묘사, 그 순간 자신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또 그녀의 특허인 소시민적 허위 의식을 스스로 까발리는 관찰들, 자기의, 평범한 이웃과 가족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그러나 비천하고 비윤리적인 본능들의 포착.
도대체 자신이 왜 이와 같은 참척의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그녀가 결국은 믿는 신에 대한 화난 질문, '한 말씀만 하소서'의 한 말씀은 결국 이 질문에 대해 답을 달라인 것인데,
그녀가 들(었다고 설득되는)은 답은 이것.
나는 내 핏줄, 친인척, 지극히 가까운 몇 사람을 빼면 타인들과 아무것도 나누지 않았다는 것.
한 권 전체가 놀랍지만,
그 중 내가 밑 줄 그은 사실은 그녀가 자신을 진단한 문장,
스스로를 이성(지성? 확인 필요)이 모자라고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한 것.
외아들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지극히 친밀했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의 시간이 지나가면서 변하는 심정을 이처럼 정확히 그려낸 일기는 다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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