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청춘의 사신> 읽다가

은은 2025. 4. 19. 14:34

1. 포장해  온 김밥과, 망설이다 꺼낸 막걸리 한 잔을 놓고

아무렇게나 눈에 띄는 책이라고 고른 <청춘의 사신> 아무 쪽이나 펼쳐 읽다가,

책날개의 서경식 선생 사진은 젊고,

그림들을 본 연도는 1990년대 초반.

샤갈의 <탄생>을 본 감상을 적는 글에서 선생은 파리에 간 이유가 샤임 수틴의 묘비에 이름의 철자가 틀린 것, 출생 연도도 잘못되어 있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라고 하고 있다.

샤갈과 수틴이 구 러시아 변방, 지금의 벨라루스 사람들이며 유대인들이었다는 내력을 적는 부분을 지나며

선생은 이들을 동포라고, 가족이라고 여겼구나, 생각이 들었다.

재일조선인으로서,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지 못한 디아스포라의 일생을 산 내면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다. 순간이지만.

선생이야말로 '나의 조국은 예술, 동포는 예술가'였던 사람 아닐까.

2. 강아지와 산책하면서 들여다 본 트위터에 누군가, 요즘은 생각이란 걸 자기가 하지 않고 챗지피티에게 생각해 달라고 맡기고, 그렇게 해서 얻은 내용에 대해 챗지피티가 이렇게 말했으니 이것이 옳다고 하는 사람들까지 보인다고 써 놓은 걸 봤다.

조만간, '엄마의 손맛', '할머니 국밥' 같은 음식점을 찾아다니듯 '사람이 직접 쓴 글'을 찾아다니게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거기다 이 19세기 화가들의 그림들을 찾아다닌 20세기 떠돌이(얼마 전 영면)의 일기 같은 글을 읽노라니, 필름을 거꾸로 감아 뒷걸음을 쳐, 스마트폰 이전 카메라 이전 텔레비전 이전....먼 이전으로 거슬러 감 사람들의 비밀 공동체가 어딘가에서 꾸려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지구 대멸망 이후의 사이파이 영화들이 가끔 구현해 놓은 것처럼, 고철더미와 전자기기부품 쓰레기들 속에 마치 새처럼 둥지를 틀고 사는 주인공들이 나오고,생명수 같은 한 권의 낡은 경전이 보물상자에 보관되어 있고, 등등

 

1970년대 생인 나는 어머니와 딸 사이에서 인간, 삶, 지구, 문명, 역사, 이성, 휴머니즘을 생각한다.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말세로 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3. 서점과 에스엔에스에 넘쳐나는 공해인 말들 '나만을 위해서', '나의 떡볶이는 소중해' 류의 각성을 하는 순간을 깨닫고 '흠' 하는 감상..

완전히 이기적으로 나를 위하는 몸과 마음의 놀림을 좀 해도 되지 않나? 지금까지 그랬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완전히 토탈리하게 처음부터끝까지 이기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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