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1

은은 2010. 3. 31. 15:43

...내가 최초로 나의 주치의에게 나의 가슴 위에 심장 자리를 붉은 잉크로 표기하도록 한 것이 바로 그 시기였다. : 만약 최악의 상황이 도래한다면 나는 결코 산 채로 루시우스 키에투스의 수중에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인접한 지방들과 섬들을 평정하는 어려운 과업이 나의 직위의 다른 임무들에 첨가되었지만, 그러나 낮 동안의 기진케 하는 일은 불면의 긴 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국의 모든 문제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나 자신의 문제가 더욱 무거웠다. 나는 권력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계획들이 받아들여지게 하기 위해, 나의 대책들을 시도하기 위해, 평화를 복원하기 위해 권력을 원했고, 특히 죽기 전에 나 자신이 되기 위해 권력을 원했다.
 나는 마흔 살이 되어 가고 있었다. 만약 내가 그 시기에 죽는다면, 나에 관해서는 일련의 고위 공직자들 이름  사이에 끼인 이름 하나와, 아테네의 집정관을 기리기 위한 그리스어 비명(碑銘)만이 남을 것이었다. 그 이래로 나는 삶의 한가운데에 이른 한 사람이 그의 성공과 실패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고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가운데,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볼 때마다, 그 나이에 나로 말하자면 아직 나 자신과 몇몇 친구들의 눈에나 존재할 뿐인 셈이었으며 그 친구들은 때로, 나 자신 나를 못 믿었듯이 나를 믿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나는 죽기 전에 자신을 실현하는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람들의 중단된 업적을, 더 많은 동정을 가지고 판단하게 되었다.낙망한 삶에 대한 그러한 강박관념은 나의 생각을 단 하나의 점에 정지시키고, 농양(膿瘍)처럼 고착시켰다. 권력에 대한 나의 갈망이나 사랑에 대한 나의 갈망이나 똑같았는데, 사랑의 갈망은 사랑에 빠진 나를, 어떤 의식들이 수행되지 않은 한 먹지도, 자지도, 생각하지도, 심지어 사랑하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더할 수 없이 긴급한 일이라도, 내가 지배자로서 장래에 영향을 미칠 결정들을 내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만큼, 헛되게 보였다. 나는 유용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의욕을 되찾기 위해서는, 지배자가 된다는 것을 보장받기를 필요로 했다.


---민음사,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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