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

요즘 본 영화들

은은 2010. 1. 28. 03:01
1. 500일의 썸머
톰 역을 연기한 남자 배우의 인상 착의(?)가, 연기에 더하여, 캐릭터와 극의 설득력을 배가시키는 영화입니다.
'나 완전 AA형이야'라고 얼굴에 쓰여 있거든요.
썸머 역을 연기한 여자 배우는 신비로운 파란 눈동자와 하얀 피부를 가진, 사상의학적으로 볼 때 하체 비만 체형의 소녀인데,
콩깍지 씌운 톰의 눈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관객들도 실감할 수 있도록! 이란 기준으로 캐스팅된 배우 같습니다.
아주 미인도 아니면서, 영화를 보다 보면  톰에게 감염된 듯 어느 새 그녀가 사랑스러워집니다.
두 사람이 만날 무렵 톰은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남자였고 썸머는 사랑은 언제든지 고통 없이 자를 수 있는 머리카락 같은 것이라고 믿는 여자였습니다.
두 사람이 헤어진 뒤에 그러니까 영화가 끝날 무렵 썸머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여자가 되었고 톰은 사랑은 계절처럼 오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됩니다.
왠지 톰이 밑지는 장사를 한 것 같습니다. 좀 밑지면 어떻습니까. '썸머' 다음에 '어텀'이 오니까요.
광기, 착각, 정신병의 일종, 남들이 뭐라고 시기하든,
한 사람에게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인생의 한 시절에만 가능한, 지나가는, 그런 다음 오랫동안 그것을 그리워하는 힘으로 살게 되는.
함께 '졸업'을 보고 나와서 썸머가 흐느껴 울던 장면이 아릿하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 이 영화에서 감정을 다루는 정도가  얼마나 섬세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2. 줄리 앤 줄리아
메릴 스트립이란 배우, 훌륭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 또 깜짝 놀랍습니다!
그녀는 오래 전 '소피의 선택'에서, 내면이 못쓸 대로 못쓰게 되어 버린 껍데기만 남은 여자를 연기했었습니다.
열정도 이유도 진정한 기쁨도 없이 삶을 연기하는 여자, 남은 감정 능력이라고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남자에게 느끼는 연민뿐이었던.
이 영화에서 '줄리아'도 '소피'와 조금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줄리아는 아이 없는 결혼 생활을, 아이 없는 여자의 삶을 견디는 여자입니다.
이 영화의 '줄리아'라는 인물을 글로 표현해낼 재주가 없군요.
메릴 스트립은 '향기'를 연기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공허를 이기기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은 복된 일 같습니다.
요리는 맛과 향과 색깔이 있고, 입으로 들어가 씹히고 내장으로 옮겨가는 스킨십이 있고, 구체적이고 육체적이고, 그리고 먹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보고 나면, 줄리가 시청하는 tv 프로그램 속 줄리아의 팬 뒤집는 장면뿐 아니라, 줄리아 옆의 남편, 줄리 옆의 남편, 친구들이 점점 더 뚜렷하게 보이는 영화입니다.
아주 좋아요.

(다음에 이어서)








'수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1  (0) 2010.03.3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0) 2010.03.10
최승자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0) 2010.01.25
<생활여행자> 에서..  (0) 2010.01.25
호우시절  (0) 2009.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