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서관 서가에 손을 많이 탄 채 꽂혀 있기에 빌려와 읽는 중.
'드라이브 마이 카', '예스터데이'라니, 비틀즈에 대한 소설로써의 오마주인가.
소설이 소설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중 하나는,
현실에서 지극히 어려운 일을 몇 줄 문장으로 '그렇다'고 서술할 때이다.
일테면 '드라이브 마이 카'의 여자 주인공이 운전을 무척 잘 한다는 사실을 그저 몇 줄 문장으로 '그녀는 그랬다'고 슥 써버리면 독자들은 그렇구나 하고 믿게 된다.
현실에서 어떤 기계 하나를 천의무봉으로 능숙하게 다루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가.
게다가 여기에는 타고난 감각과 재능이 있어야 하고 그 기술을 좋아하기까지 해야 하는 일인데.
그래서 사람들은 소설을 읽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런 소설이라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역시 하루키는 노벨 문학상은 아닌 것 같아(마침 노벨상 발표 기간이라. 벨라루스의 어떤 소설가가 받았다. 체르노빌 사태의 후일담을 기록한 소설로.), 통속 소설가일 뿐이야 하고 생각했다.
하루키의 장점 중 하나인 독특하고 적절한 비유도 역시 빠지지 않고 나오고.
이십대를 회상하는 두 번째 소설을 읽으면서는 덩달아 나의 이십대를 이 소설의 남자 주인공처럼 단정히 정리하여 회고해 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지금의 나라는 사람은 그 당시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인물이므로
이 입장에서 그때를 회고한다면 분명 상상도 못했던 빛깔로 채색할 수도 있으리라.
기억이란 건 편집되는 것이고, 가공되며, 심지어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니.
내 멋대로 꾸며보는 것쯤이야.
2015.10.19.월.
그러니까, 이 소설집에 있는 단편들의 공통점은,
제대로 된 연애나 결혼 이외의 관계에 있는 여자와 남자들이 나온다는 것이고, 소설들을 한 줄에 꿰는 주제는 마지막에 실린 '여자 없는 남자들'에서 정리해 주고 있다는 것이군.
그것 참 이마를 치게 만드는 탁월한 비유다, 생각할수록.
우리는 열네 살에 만나 새 지우개 반쪽을 나누어 가진 사이,라니! 오, 훌륭하다. 서른에 만났어도 마흔에 만났어도 본질은 그것이라니. 모든 '때 아닌, 때 늦은' 사랑들이란 과연 그러하다.
10. 21.
- 도쿄의 대학에 들어가게 되어 신칸센을 타고 상경하는 동안 내내 혼자 생각한 것인데, 그때까지의 십팔 년 인생을 되돌아보니 내게 있었던 일 대부분이 실로 창피한 것들뿐이었다. 과장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다시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한심한 일들뿐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나라는 게 너무도 싫었다. (......) 그때까지 지나온 내 삶이나 내 생각도 돌이켜보니 참으로 범속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대개는 상상력이 부족한 미들클래스 잡동사니였다. 죄다 한데 뭉쳐 큼직한 서랍 깊숙이 넣어버리고 싶었다. 아니면 불을 붙여 연기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어떤 연기가 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전부 없었던 일로 돌리고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도쿄에서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나라는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예스터데이)
- 내적인 굴곡이나 고뇌가 너무 부족한 탓에, 그 몫만큼 놀랍도록 기교적인 인생을 걷게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 그 같은 사람들은 굴곡진 주위 세계에 (말하자면) 올곧은 자신을 끼워맞춰 살아가기 위해 많든 적든 저마다 조정작업을 요구받게 되는데, 대부분 본인은 자신이 얼마나 번거로운 기교를 부리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숨기는 것도 꾸미는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들어온 헷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퍼뜩 깨달았을 때, 사태는 때로는 비통하고 또한 때로는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한다.(독립기관)
- 하지만 하바라에게 무엇보다 힘겨운 것은, 성행위 그 자체보다 오히려 그녀들과 친밀한 시간을 공유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셰에라자드는 그에게 그것을 넉넉히, 그야말로 무한정 내주었다. 그 사실이, 그리고 그것을 언젠가는 반드시 잃게 되리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그를 슬프게 했다.(셰에라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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