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61120 일.

은은 2016. 11. 20. 17:17

삶을 멈추고 쉬고 싶은 욕망 위에서 나뭇잎처럼 표류하며 트위터를 들여다보는 가사 상태 속으로

방안에서 잠을 깬 딸이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사실은 닥쳐왔다,라고 쓰고 싶다.)

다정을 가장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들어가 딸에게 잘 잤는지, 춥지는 않았는지 묻고, 장난을 치고

부엌으로 가 설거지를 하고 계란국을 끓였다. 재워 둔 불고기를 조금 굽고, 양상추 겉절이를 조금 만들고,

물김치와 새우 멸치 볶음을 꺼내 아침상을 차려 주고 혼자 밥을 먹으라고 했다.

먹여 달라는 아이와 한참 실갱이를 하고, 커피를 내렸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무엇을 했는지, 마루바닥에 끈적이는 성분의 무엇인가를 쏟아 놓은 것을 알았다.

알코올을 부어 닦아 보았지만 닦이지 않았다.

아이는 식탁 앞에 서서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는 중이었고, 화가 온몸에 가득 차 제정신이 아닌 나는 마루에 깔린 매트와 어지럽게 널린 장난감, 쓰레기와 흡사한 상태의 그것들을 아무 데로나 던지며

찌든 때 제거용 세제를 마루에 들이붓고 수세미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바닥을 닦을수록 분노는 터질 듯했고, 숨을 몰아쉬며 지옥을 겪어야했다.

그래도 아이는 콧노래를 부르며(그게 제 나름의 생존을 위한 저항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세제와 물기 투성이인 마룻바닥 위에서 장난을 치고 싶어해 화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남편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조용해졌다.

그 사이사이 스스로 죽여 버릴 것 같은 상태에서 제어가 안 돼 내 머리통을 몇 차례 갈기고, 그 사이에도 의식에서는 아이의 무의식에 지금 내가 얼마나 폭력적인 병을 던져 주고 있는 것일까 자책을 했다.

자는 남편을 깨워 나의 현재 엉망인 상태를 알리고 아이랑 무엇이든 같이 하라고 말을 했다.

피로와 수면 부족에 전 남편은 일어나 겨우 밥을 먹고 아이를 데리고 수영장으로 나갔다.

그 사이에도 나는 엎드려 온 바닥을 기어다니며 걸레질을 하고 심호흡을 하며 터지지 못하는 화를 감당하고 있었다.

마루와 부엌을 수습한 뒤, 잠시라도 격리되어 혼자 있을 생각으로 내 책상 하나를 들여놓은 아이방으로 들어와 아이 물건으로 정신이 없는 책상을 치우고 있자니, 문제의 그 물질이 내 책상과 그 밑 바닥에도 번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다시 한번 폭발하지 못하는 화가 나는 죽여버릴 것 같은 상태에서 세제와 수세미로 바닥과 책상을 닦았다.

그 사이 남편과 아이는 나갔다.

나는 식은 커피를 버리고 다시 콩을 갈아 커피를 내리고 식빵 두 조각을 구웠다.

늘 플러그가 꽂혀 있는 토스터가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뭘 어떻게 한 거야, 또!!!!!'라고 소리쳤다.

플러그가 뽑혀 있었다.

무언가 텔레비젼에서 보며(드라마? 아니면 예능 프로?) 트위터를 들여다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잼을 발라 빵을 먹고, 졸음이 쏟아져 마루에 이불을 깔고 잠이 들었다.

깼다.

폭발하지 못하는 채 가득 찼던 화는 밑으로 숨어들어 간 듯 했다.

자극적인 음식 생각이 났다.

남편이 아이와 함께 수영장에서 나와, 잘 가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겠다고 문자를 보내왔었다.

라면을 끓이는데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들어온 아이는 라면 냄비를 들여다보며 맛있겠다고 해서,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무척 매운 것이라고 했더니 늘 먹던 안 매운 우리밀 라면을 끓여달라고 했다.

금방 점심 먹었는데 지금 먹을 수 있겠느냐 물으니 먹겠다고 했다.

엄마가 좋아, 라며 옷의 단추를 풀어 달라고 했다.

바지를 벗어 던지려는 아이에게 옷을 잘 개어 정리하라고 시키고, 어젯밤에 벗어던지 바지와 내복을 갖다 주며 같이 정리하라고 했다.

그러더니 어린이 만화를 틀어달라며 그걸 보고 나서 먹겠다고 했다.

라면을 먹는데 눈밑으로 식은땀이 났다.

사이사이 생각 속으로,

아이를 사랑하지 못하는 황폐한 내면의 여자 엄마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각각 아이에게 어떻게 더 나쁠까, 토스터의 플러그가 뽑혀 있어서 자살한 사람, 내가 이 지경인데도 지금 내가 아이를 먼저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이 맞는 건지, 왜 내 것은 이렇게도 없는지, 계속 살아나갈 수 있을지,

내가 없어지면 아이의 아빠는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살아갈 생각일까, 아마 내가 그렇게도 끔찍해하는 시가로 아이를 데리고 가 살 수밖에 없겠지,

명백히 잘못된 결혼을 미봉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 본질이란 것,

결혼 직후 시가와의 갈등으로 받은 상처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처음 그대로 날 것인 것,

남편과 그쪽 사람들의 관계가 날마다 차근차근 망가뜨려 온 나와 내 인생,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나의 오만,

하루라도 더 이런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것,

죽음을 실행하기 전에,

어떻게든, 나의 삶을 적어 두어야 한다는 강박에 노트북을 열고 여기까지 써 왔다.

이것은 병일까, 그렇겠지.

지난 봄부터 지난 주 이전까지는 그런 대로 상태가 괜찮았었는데.

분노가 치밀어 나를 때리는 일은 적어도 한동안은 없었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가 가만이 앉아 있고 싶다. 그럴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그 기막히고 나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했던 시기에도,

마음은 히말라야 기슭에 오체투지하며 헤매고 싶었지만 가난과 그 알량한 내일의 밥값 걱정에 남은 돈을 세어 보며 춘천, 그 지옥으로 기어들어갔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를 구하는 일이 정말이지 당면한 절실한 일인데,

아픈 엄마의 생활비 등등을 생각하며 어딘가 지옥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아마 내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한 가지는 죽음이 아닐까.

계속 살아간다는 모든 일이 이처럼 버겁고 힘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는 일을 한껏 미루려는 나의 무의식,

나의 부모는 자신들이 나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죽고 나서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낫지 못한다. 못했다.

진정한 관계를 두려워했던 내가 아마 가장 견딜 수있을 법한 이 결혼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관계가 없는 관계'를. 본능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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