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61123 수.

은은 2016. 11. 23. 23:30

청탁 받은 원고를 핑계로

저녁을 먹자마자 아이와 외할머니는 불 끈 마루에서 <겨울왕국>을 보고 있고

나는 책상(아이의 방 한구석에 놓은, 전에 식탁으로 쓰던 이케아 원목 탁자) 앞에 앉아

유튜브로 jtbc뉴스를 시청하며

원고의 목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트위터, 책 뒤적이기, 카톡 대화)을 하다가 문득,

이렇게, 태연히, 엄마의 부분이 적은 자신으로, 가책 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순간이 놀라운 일이란 사실을 깨닫고,

 

아이가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엄마 부분'과 그 이전의 자아 사이의 격절,이란 말이 떠올라 급기야 이 창을 열고 일기를 쓴다.

'엄마 부분'의 자아를 수행하기 위해 그 이전의 자아를 억압해야만 하는 상황이 지속될 때의 불행감.

아이와 있을 때 끝없이 유예되는 자아와 실존.

엄마인 나와 나머지 나와의 불화...

 

** 갈 데 없는 사람, 되어 버린 11월 한 달,

오로지 '말 몇 마디'로 흉내내던 배역의 가면도, 의상도 관객 앞의 무대 위에서 홀랑 벗기우고, 옹졸하고 황황한 속 다 들키고 말았네.

언젠가 누가 그랬지, 그럴 땐 내리는 비만 뚫어져라 보라고.

비도 안 내려 대신 노란 은행잎들 뚫어져라 보았다.

이 궁지에서, 떠났다 오고 싶은 마음 조금 절실...

내가 망쳐 놓은 이 그림 밖으로 나가고 싶음.

언제부터인가, 다 망치고 나서의 평안 같은 건?

허나, 좀 생각하다 보니 이 정도로 엄살이구나 싶기도.

 

*** 어젯밤은 잠들기 전 아이에게

황인숙 시집의 시 한 편(그 중 그나마 가장 우울하지 않은 것 골라서) 읽어 주고는,

어떤 기분이야? 물었더니,

좀 슬퍼,라길래

왜? 옥상에 벌렁 누워서 하늘 보는 건데? 바람도 불고? 했더니,

친구들이 아무도 안 나오잖아, 라고.

제목이 <걱정 많은 날>.

 

**** 친구 팔에게 몇 가지 원두 사서 부칠 것.

 

*****홍상수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을 보았다.

친구 말이, 거기 여주인공은 바로 나라고(하하! 어쨌든 왠지 영광,으로 정리한다.)

영화계의 지식인 남자들이 그토록, 이 영화도 물론 예외가 아닌 듯, 이 감독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쌍수를 들고 감읍하는 이유를 짐작해 보았다.

아마, 남자 주인공에 이입되기 때문이 아닐까.

건너갈 수 없는 저 반쪽의 세계,이니 짐작해 본다.

비교하자면, 미혼 독거 여인들이 마스다 미리의 책이 나올 때마다 사서 보고 좋다고 느끼는 것과 같은 걸까.

이번 영화에선 드디어 여자 엑스트라 인물이

"여자도 남자랑 똑같아요. 뭔가 다르길 바라나 봐(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의미)."라고 말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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