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23.07.11.화요일, 초복

은은 2023. 7. 11. 14:15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책상과 컴퓨터를 배정 받았으나 

이 곳이 직장이며, 내가 계약을 체결한 노동자로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실감하지 못한 채 2달이 넘게 지냈다.

책임도 다하지 못했다.

내가 임금과 계약과 업무,를 대면한 것은 겨우 지난 주말과 어제이다.

두 달 여 동안 시간을 어떻게 보낸 거지..?

일생이 그러했듯, 뒤늦게 현실을 자각했고, 그동안의 우스운 광대짓을 혼자 관람했으며, 언제나처럼 '지금이라도 각성해서 얼마나 다행인가'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찰라의 시간에 나를 용서했다. 여기까지 연명해 온 수법으로. 이제 수 초도 걸리지 않는 용서.

숨쉬는 순간마다 내가 나에게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다면,

모자라고 무능하고 비겁하고 게으르고 근성없는 약한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굳이 술을 마실 필요가 없으리라.

그러하다, 그러하다면 지난 세월을, 나는 어떻게 하고 살아서 온 것일까.

무엇에 홀려서?

소문? 엄마의 욕망? 세상이 눈앞에 내미는 이력서 양식?

필사적으로 자기를 마주보지 않은 채 '그럴듯한 흉내'에 찌들어 냄새나는 누더기를 걸치고 웃고 있는 나를 본다.

지금 나는 여기서, 나를 혐오한다. 이 정든 자기혐오. 자기혐오라는 것도 너무 오래 곁에서 뒹굴어 이제 석기시대의 돌무기보다 무디어졌다.

애초에 인간의 생애라는 것이 동물의 뼈대에 휘감긴 안개의 형상인 것 같지만,

 

돌아가고 싶다. 다만 나에게로. 자연과 나와 나만이 있는 시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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