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디어 말하건대 나는 처음부터 내내 사는 일이 무서웠다. 무섭지 않은 순간은 한순간도 없었다. 없었던 것 같다.
사는 일이 너무너무 무서웠다.
그러니 죽는 일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날마다, 사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겁이 나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런데 무척 안 그런 척했다.
심지어 보통 사람보다 겁이 없는 척, 하나도 무섭지 않은 척했다.
그리고 잘 사는 법을 알고 있는 척, 그렇게 살 수 있는 척했다.
필사적으로 겁에 질린 무능한 내부를 감추고 또 감추었다.
나 자신부터가 그 쪼그라든 나를 절대 들여다보지 않았다.
돌보기는 커녕 인정하지조차 않았고, 없는 척했다.
아주 구박하고 증오하고 백 번도 넘게 살해하거나 내다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은 환경에서 보통 뭘 어떻게들 하는가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난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이제 순순히 말해 본다.
난 처음부터, 늘, 지금도, 아마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겁나고 무섭다. 살아갈 자신이 없다.
세상이 무섭다. 돈을 벌 자신이 하나도 없다.
그럴 듯한 모양새의 화이트 칼라 직장인으로 평생 살아갈 돈을 어떻게 벌 수가 있지?
그런데 인간을 하나 낳았다.
이것도 아마 너무너무너무 겁에 질려서 저지른 일인 것 같다.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 주제에 날마다 커피를 마시고, 날마다 저녁때 맥주나 와인을 마시고 살았다.
그리고 어쨌든 운전을 하고 다니고, 한 시간 전만 해도 도서관 구내식당에 앉아 밥 한 공기와 김치찌개를 싹싹 긁어 먹었다.
평생을 겁에 질려 공포 속에서 살아왔고, 그런 주제에 불면이라고는 겪어 본 적이 없고,
그리고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흐뭇해하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잘난 사람 축에 들려고 애썼고, 속으로 가까운 사람 잘 모르는 사람 가리지 않고 무시하고,
불만에 가득 차서 은혜를 베푼 사람들에게 덤벼들고,
마음속으로 모든 사람의 흠을 찾고 깎아 내리며 살아 왔다.
이렇게 쓰는 지금에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예쁨 받고 만남에서 기쁨과 흐뭇함을 느낄 헛된 욕망을 포기한다.
인간사에 기쁨이란 없어.
겁에 질린 채 어찌어찌 50년이 넘게 살아 있고,
이제 강릉 정도의 고향 언저리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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