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네 시, 다섯 시, 여섯 시

은은 2024. 2. 1. 06:44

 어느 날부터 수면 패턴이 전형적인 노인의 것이 되었다. 초저녁 잠을 자고, 자정 무렵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고, 새벽에 깨어난다. 내가 '나'라고 믿는 나는 오후 네 시에 하루를 시작하고 새벽 네 시에 저녁을 맞는 사람이었다.

거기서 여기까지 나는 어떻게 온 거지?

어제 저녁밥을 차려 주느라 개수대 앞에 서서 수돗물에 손을 적시면서는 "이건 진짜 미친 짓이다" 혼잣말을 했다. 지금껏 밥을 차려 대고 있는 것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과연 그러하도다. 누웠던 자리에서 한 번에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설 때마다 신음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몸을 갖게 된 지금, 폭삭 줄어든 온 힘을 쏟아 장을 보고 청소 설거지 걸레와 행주에 절을 하고 있다. 이 창대한 나중.

한 점의 정지.

휩쓸어 가는 시간 속에서 한 점의 고요, 닿고 싶은 것은 그것인데, 가장 딱딱하고 확실한 정지는 'BODY'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내가 이룬 정지를 맛볼 수가 없으니까, 살아서 그걸 해 보려고 발버둥치는 것일 텐데,

예컨대, 존재의 바닥끼리 살을 맞대는, 맞닿아지는, 타인이 있어, 숨만 쉬고 나란히 앉아 있는 시간, 그 절대와 평온.

 

'결혼' 은 전쟁의 시작이었다. 가장 중요한 '미약한 시작'. 전장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나날의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육신과 의식은 쇠락했고, 그리고 결국 시간과 노쇠와 망각이, 가능한 유일한 '해결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다영이라는 소설가의 소설집을 한 권 사서 단편을 하나 읽었다. 재치 있다고 생각했다. 나와 나 사이에도 칼이 있었다.

시원한 물을 한 잔 마시러 가야겠다. 3인과 1견 중에서 매일매일 돈을 줄줄 쓰는 것은 나뿐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미친 짓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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