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

이창재 지음, <프로이트와의 대화>

은은 2010. 7. 23. 03:27
주체적으로 제대로 만나고 알지도 않은 채 무성한 소문에 귀와 입이 불러 마치 다 아는 양 자신조차 착각하게 되는 사상이나 작품들이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른 목록으로 있는 것인데,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그렇게 취급되는 사상가 중 한 사람이 프로이트일 거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또, 그런 우를 범하지 말자 싶어 오롯이 한번 대면해 보려고 마음먹으면, 그 깊고 방대함에 곧 갈피를 못 잡게 되고, 전공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교양' 차원의 독서를 하기가 쉽지 않기도 하다.
나의 경우, 전공자가 아니면서 또 평범한 '교양인'도 못 되도록 불성실한 독서와 '감'으로 넘겨짚는 버릇으로 중요한 프로이트를 아주 망쳐 버렸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는 호기심에 이끌려 라깡, 지젝 등으로 덤벙대고 만 지경이라고 생각되는데, 갑자기 다시 차분한 프로이트 입문서 한 권을 읽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확실히 깨달은 사실 한 가지는, 어떤 사상가나 사상이나 예술 분야에 대해 입문서를 쓰는 저자는 필히 그 저작의 대상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직면해서는 충신이 왕을 보필하고 의리를 지키듯이 하는 것이,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매우 유익하겠다는 점. 곧, 먼저 앞으로 나아가며 드러난 바를 알고, 나중에 뒤를 돌아 숨겨진 것을 찾거나 문제점을 알고 놓인 맥락에서 생겨나는 의미로 넓혀가는 것이 좋겠다는 것. 입문자에게는.
설명문식의 이론 서술이 아니라 '교재' 식으로 제목들을 세분하여 소개한 점도 가독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는 것 같다.
후반부의 내용 중 특히 정신 질환의 발생 조건으로서의 사후 작용(지연과 회고), 초자아의 특성과 관련된 죄책감 부분을 책을 붉게 물들이며 읽었다. '지연과 회고 작용'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개념들인데 정신분석을 완전히 새롭게 생각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죄책감' 부분에 집중하는 심리는 역시나 '내 탓이 아니야'인 것 같은데,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거세시키고자 하게 되며, 거세된 무기력한 존재로 살아가려 한다는 분석...등은 마음 아프게 읽었다.

죄책감과 그 결과 발생하는 자기 처벌적 증상 및 행동의 반복은, 새로운 통합을 이룩하려는 에로스의 활동에 대립한다. 죄책감은 외부 지향적인 성취 욕구와 쾌락 욕구를 해체시킨다. 그 결과 개인은 무기력하고 불감증적인 심리 상태에 처하게 된다....
죄책감이 너무 클 경우, 자아의 온전한 현실 인식과 전인적 관계 맺기는 불가능하다. 죄책감에 강박적으로 휘둘리는 사람은, 자신이 다스리지 못하는 힘에 자아가 좌우되는 일종의 유아 상태 내지 노예 상태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죄책감은 또한 정신분석 작업에 대한 '부정적 치료 반응'과 사회적 성공의 방해, 쾌락에 대한 불감증, 인식 기능과 관계 기능의 마비 등의 부정적 결과를 낳기도 한다.

'수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황  (0) 2010.07.25
제인 캠피온 영화 <브라이트 스타>  (0) 2010.07.23
영화들  (0) 2010.06.20
토마스 베른하르트, <옛 거장들>  (0) 2010.05.29
토마스 베른하르트,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0) 2010.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