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에 이어 <작가와 술>을 읽는다.
원제는 <The Trip to Echo Spring : On Writers and Drinking>으로, 2013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2015년에 출판사를 옮겨 다시 출판된 책.
책은 여행+문학+술을 아주 멋지게 버무린 기획. 저자는 분명 재치와 성실함, 작가적 감각을 겸비한 사람일 것이다.
테네시 윌리암스의 활동 무대에서 이틀을 보낸 뒤 저자는 이제 루이지애나까지 기차 여행을 시작했고,
스콧 피츠제럴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등장했다. 둘은 스물 다섯, 스물 여덟의 나이에 파리의 한 바에서 처음 만나고, 그렇지 않은 것이 더 신기하겠지만 서로 첫눈에 마음에 든 이후 깊은 우정을 나눈다.
그리고 아무튼 술을 마시고 부인과 아들과 여행하다가 새로운 사랑에 빠지고 또 어떤 부인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다들 불면에 시달리고 사고를 일으킨다.
앞에 옮긴 굉장한 도입부의 다음에 한동안 알콜 중독에 대한 정신의학적, 과학적 내용을 소개하는 부분이 이어진다.
대체적으로 알콜 중독은 50% 정도 유전의 영향을 받는다고 현재 합의되어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추적한 6인의 작가 외에 무수한 작가들이 알콜에 의존하여 생애를 보냈고(물론 훌륭한 창작품을 생산했다.), 그들은 대개 '나약한 아버지+강인하고 고압적인 어머니' 조합의 가정에서 태어난 경우가 많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 가정 환경 속에서 그들은 어려서부터 '자기 존재의 부적절감'을 심하게 느꼈으리라고.
'존재의 부적절감' 이처럼 알맞은 표현도 없을 것이다.
저자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날아와 이들 작가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 여행을 하며, 견문과 감상을 적절한 순간 적절한 곳에 삽입하며, 작가들의 작품은 기본으로 하고, 그들의 편지와 에세이, 주변 사람들이 남긴 자료들 속의 이들의 모습을 수집하며 이들이 음주 생활을 해 나간 내면을 추적, 탐구한다.
그들의 아름답고 선한 걸작품들이라는 절대적으로 우호적인 증거들이 있고, 그들의 연약함, 용기, 불우한 가정사 등이 모두 그들의 무죄를 외치지만, 그 사이에서 나는 짐작한다. 그들의 나태, 방탕, 이기심, 무책임을.
어쩔 수 없이.
세계대전 시기부터 196,70년대의 작가들, 영미 문학 작품들을 돌이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단지, 알콜 중독이란 증상과 질병이 남일같지 않은 것이다.
2. 어제는 작취미성의 상태로 열심히 책을 읽었고, 와중에 이대까지 흘러가 영화 <레이디 맥베스>를 보았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러시아 소설(<므첸스크 지방의 맥베스 부인)>이 원작이라는 영화는, 우선 잡다한 것이(음악조차도!) 나오지 않아서 참 좋았다.
그녀는 과연 대단한 인물. 이동진 평론가가 '그 모든 것을 체화한 듯한 배우'라고 했던데 진정 그러하였다.
그녀의 '강철군화'스런 욕망과 그것을 향해 내닫는 성격이 지금의 내게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러면서 사랑이란 것도 적당히 사회의 눈치를 보고 기죽고 자기 반성을 해야 아름다운 건가, 생각해 봤다.
서점 나간 길에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 앞에 진열되어 있기에 들춰 보았는데, 과연 소설의 첫 문장이 그녀를 더할 수 없이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어 적어 왔다.
'우리 지방에서는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생각할 때마다 영혼의 전율을 느끼게 하는 그런 인물들이 가끔 나온다.'!!
기억할 만한 그녀의 본명(?)도 여기에 적어 둔다. 카테리나 리브로나 이즈마일로바.
그때 그녀는 스물넷이었더군.
3. 음주 자체는 물론이지만, 음주를 하도록 이끄는 욕망, 그리고 그 후의 각성과 고양, 그리고 술을 깨는 과정의 자기 혐오와 두통과, 잠깐의 각성에 대한 대가로 치러야 하는 반수면의 무기력 상태...이 모든 일들이 이제 정녕 버겁다.
<작가와 술>을 읽으며, 나의 알콜 탐닉 시절을 돌이켜보게 되는데, 그때의 아침에 눈 뜰 때마다의 불안과 공포(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날마다), 자기 혐오와 열등감, 세상과 사람들 속에서 매순간 느끼던 이물감, 말그대로 '존재의 부적절감', 충동적인 형태로 쏟아지던 애정 결핍의 증상들, 그러다 술에 취하면 그 반면으로서의 열정들...을 생각하면,
그 불안한 정신 속에서만 반짝이던 영감들과 생에 대한 긍정의 순간들과 인간에 대한 선의를 생각하면,
연민 외에 다른 것은 떠올릴 수가 없다.
(그 시절 이후의 배신감과 집착, 원한과 증오의 시기는 돌이키고 싶지 않다.
역시 애초에 어떤 경우에도 낮추고 구걸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4. 순간적인 인상을 기록하는 일기 이외에, 장기적이고 계획적인 글쓰기를 도모해 볼 것.
글쓰기 수업에 참여해 보는 것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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