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 106

유시민 <유럽도시기행1,2>

1권 머리말이 2017년7월로 되어 있는데 '이 기획을 시작한 지 5년'이라고 했으니 2014년부터 준비, 여행을 다녔다는 얘기다.읽다 보면, 바로 그 자리에서 검색을 통해 얻어낸 정보를 바탕으로 쓴 '컨텍스트' 소개도 있는 것 같고, 필자 스스로 도무지 한 가지의 정체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 없는 책이라고 밝혔 듯, '광범한 인문적 지식의 내공과 택스트 탐구의 경력과 방법을 아는 교양 있는 중년 남자 지식인의 기행문'이라고 할까.한마디로 하면 '유시민표 유럽 도시 기행문'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을 돌아본 2권을 제법 꼼꼼히 읽고, 1권을 빌려 읽고 있다.나의 의문과 생각의 지점은, 유럽의 역사와 문화 유산이 오늘날의 남한의 단독 여행자와 어디서 맞부딪힐까.나라는 실존은 이 세계 전체와 상관된다..

수집 2025.04.25

<일인칭 가난>과 <미미한 천사들>

, 안온 지음이 아가씨,는 1997년생. 부산에서 나고 자람. 대구의 대학으로 입학하며 본가에서 탈출.'20년을 기초수급자로 살았더니' 뭐가 어떻다고 했던데 기억이 잘 안 남(추후 확인하여 보충할 것)생부모의 양쪽 집안은 뜨뜨르한 것 같고, 적어도 굶고 살지는 않았던 것 같고,부모가 결혼할 때 태중에 있었던 이 아가씨 팔자가 사나웠는지, 결혼 후 부와 모 모두 몸에 해와 병을 얻고,친부쪽은 폭력을 동반한 알콜중독자로 버티다 번개탄을 피워 자살.네 살 무렵의 저자를 맡아 돌보던 조모는 저자의 아비인 아들과 그 아비인 조부 사이의 불화에 못 견디고 음독 자살.이 아가씨는 아마도 국립 경북대에서 문학 공부를 했고, 또는 하고 있고,그런데 이 책의 감상을 나는 왜 이리 반동적인 꼰대 아줌마할머니처럼 쓰고 있을까..

수집 2025.03.02

서경식 <어둠에 새기는 빛>

책 읽는 습관을 다 망친 지 어언 십 년이 넘는데,사실, 청소년 시절부터 젊은 날에도 책을 엄청 많이 읽지는 않았다. 감수성이 좀 특이하고, 직관이 발달한 편이라과독인 것에 비해서는 주목할 만한 감상들을 내놓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아 왔던 것 같다.아무튼 2024년 읽은 책 권수는 10권이 넘을까? 못 넘을 것도 같고. 이 지경인데사게 되는 책은 대부분 트위터를 통해 주워듣는 책들.서경식 선생의 이 책도 그렇게 구입하여 띄엄띄엄 칼럼 한두 편씩을 읽다 말다 하고 있는 중인데선생의 독서에 관한 챕터에서 지나칠 수 없는 책을 발견하여 여기 적어 둔다.장 아메리의 이 그 책인데, 칼럼에는 이 책의 부제는 나오지 않는데, 부제는 내 기억이 기특하게도 맞다면..

수집 2025.02.17

켄 로치 감독 <나의 올드 오크>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빵과 장미, 나 다니엘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블루칼라들의 시인, 이 감독 이름이...이제 생각나네, 젠장모짜르트를 좋아한 남편이 진작부터 최고라고 얘기해 온 이 감독은 남편이 지구상에서 가장 애틋해하는 나라 아일랜드 사람..나는 바흐를 좋아했고 왕가위, 오즈 야스지로, 허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이안, 페드로 알모도바르 등의 영화를 주로 봤다.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를 봤을 때 심히 놀랐고, 세상에 나만 느끼고 생각하는 기괴한 짜투리 마음들을 같이 느껴서 그걸 영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구나...했다. 그동안 켄 로치는 너무 단선적이고 평면적이라 생각했다.얼마 전 왓챠에서 를 보고 나는 외쳤다. "다 필요없어, 켄 로치가 짱이야"미망의 허영 속을 헤매며 젊은 날을 보..

수집 2025.02.17

박완서 일기 <한 말씀만 하소서>

1988년에 25세 인턴을 마치고 전공의가 되려던 막내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그러하였다는 사실은 소문 속에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후, 그녀가 어느 수도원에 칩거하며 쓴 울부짖음의 일기(라는 사실도 소문 속에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2005년에 출판됐던 것을 작년에 재판을 했고, 그 판본이 이미 24쇄를 넘겨 인쇄됐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개정판에 붙인 큰딸 호원숙 씨의 짧은 글이 덧붙여져 있다.컨디션이 엉망인 채로 읽기 시작했는데 졸다 깨며 아침까지 한번에 읽었고, 놀람과 외경의 마음이 들었다.비통, 원통, 절망, 분노, 슬픔, 단장의 고통...그 매순간의 자신의 마음 속 상태를, 의식의 내용을, 파헤치고 끄집어내 샅샅이 써내려 갔다는 것.곧 따라죽고 싶은 열망, 그러면서도 하루하루 일상이 흘..

수집 2025.02.17

안희연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에서 한 편

호두에게 부러웠어, 너의 껍질깨뜨려야만 도달할 수 있는진심이 있다는 거 나는 너무 무른 사람이라서툭하면 주저앉기부터 하는데 너는 언제나 단호하고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한 손에 담길 만큼 작지만우주를 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너의 시간은 어떤 속도로 흐르는 것일까문도 창도 없는 방 안에서어떤 위로도 구하지 않고하나의 자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가졌다는 것너는 무수한 말들이 적힌 백지를 내게 건넨다 더는 분실물 센터 주변을 서성이지 않기'밤이 밤이듯이' 같은 문장을 사랑하기미래는 새하얀 강아지처럼 꼬리 치며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새는 비를 걱정하며 내다놓는 양동이 속에설거지통에 산처럼 쌓인 그릇들 속에 있다는 걸 자꾸 잊어, 너도 누군가의 푸른 열매였다는 거세상 그 어떤 눈도 ..

수집 2025.01.31

차도하,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박참새, <정신머리>

H언니가 읽고 있다고 말해 주어서 두 사람의 이름을 기억했다가 읽고 있다. 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있는데 그것조차 마음이 편치 않은 책이다. 책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 저자는 스스로 이 세상의 자기 자리를 떠났기 때문에 남은 이 책이 사람이다. 99년생. 불우하여 불행하게 살아야 했던, 아프다가 일찍 죽은 저자의 글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이런 격세지감을 처음 느꼈던 때를 기억한다. 김애란과 황정은이 등장했을 때 그녀들의 글을 읽고서였다. 지금 그녀들은 한국 문단의 중견이자 심사위원이 되었다. 너무 어린 사람의 일기를, 애초에 핏기 없는 얼굴로 힘없이 말하다 세상을 버린 친구의 글을 나는 읽고 있다. 사이사이 여행 예약을 하며. 어떤 편들은 시이고, 어떤 편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의 게시글 같고,..

수집 2024.02.19

영화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

영어 제목은 네. 찾아보니 를 쓴 소설가 아사이 료의 원작 소설을 토대로 만든 영화네. 도 영화로 봤었는데, 어쩐지 과연,되는 바다. 소도시 고등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잘 그리는 작가인가 보다. 영화는 착하고 진지하고 코끝을 울리는 감동이 들어 있다. 아련하다고나 해야 할 감상이랄지. 그러나 마지막 못생긴 남학생이 반주 없이 부르는 '오 대니 보이'는 아주 좋더군. 이 노래의 가사가 이렇게나 아름다운 줄 몰랐다. 아침밥 준비하며 유튭으로 찾아 여러 버전을 들었는데, 정말로 조금 눈물이 찔끔 났다. 같이 영화를 본 딸아이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나이가 되면, 여름이 시작되면 다시 돌아오거라, 라고 누구든 '돌아와도 돼'라고 말해주는 그 안심과 흐느낌의 마음을.

수집 2024.01.30

아다니아 쉬블리 <사소한 일>

1974년생 팔레스타인 소설가의 중편 길이의 소설을 읽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작품은 근래 드물게 나를 끌고들어가는 데 성공해 주었는데(이것만으로도 너무나 황송하다), 인물의 아주 미세한 동작 하나하나, 배경 구석구석을 끈적끈적할 정도로 농도 짙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누런 사막의 모래먼지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고, 어쩌면 서사다운 서사가 없어서 매우 시적이었다. 아름다웠다. 다 읽고 나서는, 아랍어를 전혀 모르니, 혹시 짐작과 달리 이 작가가 남자이면 어쩌지, 하며 열심히 구글링을 했고, 다행히(!). 굳이 의식을 휘어잡아 기합을 넣지 않더라도, 자연히 흑인의 삶, 팔레스타인 난민의 삶의 정서에 훨씬 가까이 내 인생의 정서들을 놓게 된다. 그것들은 인척 관계이다. 팔레스타인. 아랍..

수집 2024.01.30

거울을 바라보기

실은 나도 할말이 많다. '이렇게가 아니라 저렇게 살고 싶었다'라든지, '그때 내 잘못이 아니라 네 잘못이었다'라든지 하는 것들. 내가 내 얼굴을 사납게 노려본다. 그래, 좀더 잘하고 살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꼭 그렇게 잘살아야 되겠니? 내가 나에게 말을 건다. 무엇 때문에 사납게 주름잡힌 상판을 들고 그렇게 잘살아야 하겠니? 이치를 따져가며, 잘잘못을 물어가며... 허수경, 226p

수집 2020.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