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 106

최승자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53p, 그녀는 사프란으로 떠났다 그녀는 사프란으로 떠났다 무수히 해가 뜨고 해가 져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씩 초인종이 울려도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사프란으로 떠났고 그녀는 이미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또 오늘의 요리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부엌 창문턱의 작은 아이비 화분, 먼 꿈 하나 댕그라니 꿈에도 비에 젖지 못할

수집 2010.01.25

<생활여행자> 에서..

제목 : 허영의 달인 그녀는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다. '왜 나에게는 아무것도 문제 되지 않는 걸까?' 그녀는 돈과 도덕 그리고 사회적 인정 그 어느 것에도 몰입하지 않는다. 이 세속에서 어떤 자리도 차지하고 있지 않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녀 역시 아주 자주 자신이 이 세속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서슴지 않고 드러내지만 그 이전에 사람들은 그녀의 허무를 더 빨리 읽는다. 가끔씩 그녀의 허무를 바라보는 사내 몇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순수한 그녀가 이 세속에서 너무 함부로 취급받는다는 점에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막상 그녀는 그런 평가에는 무심해 보인다. 차라리 봄날 볕 좋은 곳에 소풍 온 순수의 아다다처럼 머리에 꽃을 꽂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는 굳이 거짓된 방법들을 동원할 이..

수집 2010.01.25

호우시절

청두, 이런 지명, 봄 대나무숲의 연두, 이런 빛깔, 두보초당(우리나라엔 다산초당이 있지만), 이런 시인의 향기, 그런 거지 뭐. 안 웃을 때의 얼굴과 웃을 때의 얼굴이 서로서로 참 돋보이게 하는 배우 고원원 양과 아무리봐도 내 눈엔 떡판처럼 보이는 배우 정우성 군이 추억, 재회, 말할 수 없는 비밀, 결국 실신지경, 조금 빛이 죽은 가능성, 이런 과정을 군더더기 없이 밟아 나가는 동안, 나는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1인의 남과 1인의 여가 만났을 뿐인데 저렇게 주변 공간이 휘어지게 만드는 긴장감은 어디서 나는 걸까 그 여자이기 때문이, 그 남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이 각자의 자기들 속에서 뽑아 내었을 뿐이라고, 아직, 그런 걸 뽑아낼 수 있는 그런 걸 마음 속에서 꺼트리지 않았을 뿐이지, 그러니까 ..

수집 2009.12.15

<근처>와 <너의 여름은 어떠니>와 너는 어떠니

올해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품과 최종 후보작 중 김애란의 단편. 두 소설은 우연하게도 많이 닮았다. 는 인생이 불운한 40대 남자가 간암 말기 선고를 받고 고향인, 모서리 옆의 모북리로 돌아와 국민학교 운동장에 묻었던 타임캡슐을 꺼내 보고, 여자 동창생에게 낚이는(?) 내용. 는 뚱뚱한 여자 아이가 대학 때 짝사랑한 선배에게 자신의 순정을 이용당하는 내용. 의 뒷맛은 박민규답고 의 뒷맛은, 뒷맛은... ...그리고 습기 많은 자기 방으로 돌아와 옷도 못 벗고 누운 여주인공은 눈물을 훔쳐내며...그러나 그 마지막 순간 '내가 이렇게 살아 있어서 어디선가 누군가 아팠겠다'는 생각 같은 걸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것인지, 그렇게 쉬운 걸 여직껏 생각하지 못할 수가 있었다니, 하는 자책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인지...

수집 2009.11.13

<파주>, 박찬옥 감독 인터뷰

네이버 이동진의 영화풍경에서 박찬옥 감독 인터뷰를 봤는데, 영화와 감독의 의도 사이에 거리가 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영화에 대한 감독의 해설을 듣고 아, 그렇구나 하는 기분. 또, 주인공 중식이 종교적 인물이라고 본 이동진 기자의 견해도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하였고, '배덕'이라는 감정을 감추어 놓았다는 감독의 설명도 인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였다. 철거민 투쟁은 너무 정치적 색채가 짙은 소재라 이 영화를 감독이 예측하지 못한 쪽으로 불쑥 끌고간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 난 영화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된다. 중식이라는 인물에 대한 나의 이 근거없이 확고한 불신감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분명 중식이 아니라 나 때문인 것 같은데. 나의 남자에 ..

수집 2009.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