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 106

<정희진처럼 읽기>-2

* 턱뼈는 '돈을 주고' 잘라낸 것이고 손 무덤은 '돈 벌려다' 잘려 나갔다. 턱뼈는 자해(?), 손 무덤은 피해다.(턱뼈도 깎아 내는 사람들이 주로 여성이라는 점, 이것도 피해다.) 두 가지 현실은 인식론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생각대로 사는 삶과 몸에 근거한 삶이 그것이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하는 대로 살라? 내가 몹시 경계하는 말이다. ... '불필요한' 성형 시술은 사회적 요구를 몸에 실현하여 체제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생각한 대로 사는 것은 '지금 자기'를 부정하고 욕망을 따르는 가치 지향적 삶이다. 그 가치가 바람직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 이 말은 경쟁 사회의 자기 다짐이고, 다이어리 첫 장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경제적 성취든 인격과 실력 배양이든 '그렇게 되어야 한다..

수집 2015.02.06

<정희진처럼 읽기>(교양인, 2014년 10월)에서-1

* 더는 주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지 않는 인간, 하느님의 사랑보다 더욱 힘차고 고마운, 고통받는 인간을 견디게 하는 분노, 저주, 복수심,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용서라는 피해자의 권한마저 빼앗아버린 신.(44) 고통의 감정은 물질이다. 달리 해석될지라도, 크기가 작아질지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몸에 있다. 가해자의 몸은 고통의 경험이 없으므로 온갖 절대자의 이름으로 자기 마음대로 구원, 용서, 평화라는 관념의 향연을 주관할 수 있다. ... 반면 피해자의 구원은 '고문하는 자'도 피해자도 지칠 만큼 고문의 노동이 지난 후, 잠시 들이마시는 숨 같은 것일지 모른다....가해자의 권력은 자기 회개와 피해자의 용서를 같은 의무로 간주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분노는 개인의 마음 상태..

수집 2015.02.04

2014년 10월 17일자 한겨레 정희진의 어떤 메모

안전한 관계 , 김찬호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4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문제의식이다. 문제의식은 왜 이런 글을 썼는가에 대한 저자의 주장, 독자의 읽기 과정, 사회적 합의라는 세 가지 아름다움의 일치다. 문제의식은 ‘새로운 소재 발굴’ 차원이 아니라 세상에 없던 생각이다. 그래서 문제의식은 글쓴이의 지식, 생각(이론)의 틀, 정치적 입장, 사회에 대한 애정 등 인간의 지적 능력을 집약한다. 문제의식은 당연히 새로운 것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지 않으면 남아 있던 발효물이 섞이게 된다. 그러면 어디서 새 부대를 구할 것인가. 새 그릇은 진실이 두려운 세상이 숨겨놓은 지식 생산의 방법이다. 찾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김찬호의 의 성취를 요약한다면 두 가지. 방법론과 내용이다. 슬픔..

수집 2015.01.11

1월10일자까지, 한겨레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나는 늘 내 문제가 궁금하고 그로 인해 생성되는 ‘삶의 화학’에 골몰하는 편이다. 내게 인생의 절정, 결정적 순간은 패배 후의 복기다.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 혼돈과 의문의 시간에 바로 복기할 수 있다면! 그 깨달음의 절실함과 기쁨을 어디에 비교할까. 집약된 배움, 농축된 시간. 바둑의 복기는 요다 노리모토 9단의 휘호처럼 “이치고이치에”(一期一會, 다시 오지 않을 단 한번의 기회)일지 모르지만, 삶은 복기의 연속이다. 그래야 한다. 매 순간이 대국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복기는 트라우마, 집착, 후회를 가져온다. 지나간 일을 제대로 해석하는 것.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복기 , 이창호 지음, 손종수 정리, 라이프맵, 2011 -고통은 만사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환상을 깨뜨린다. 신으로부터 자립할 수..

수집 2015.01.11

황정은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

* 11월 말에 사 두었던 황정은의 짧은 장편 를 읽고(창비에 연재됐던 거네?!) 이어 얼마 전 눈에 들어온 박연준이란 1980년생 시인의 산문집 을 펼쳐 읽었는데 마치 같은 사람의 글인 듯하다. * 황정은의 긴 소설들은 확실히, 모두 성장 소설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 에 이어, 아이들이거나 아이들처럼 보이는 청년들의 이야기. 폭압의 세계에서 이 소설가가 마음이 쓰이는 것이 어리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 가난함도 일종의 '어림'일 수밖에 없으므로 전체적으로 '어린 사람들' 이야기라고 느껴지는 걸까. 또, 이 작가는 눈과 마음이 가는 이 '어린' 사람들에게 가혹하고 싶지 않아서 소설 속에 제대로 나쁜 어른 하나 설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또 전체적으로 더 '어리게' 만드는 것 같다..

수집 2015.01.09

데이비드 실즈,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 메어리드 번의 은 모든 대목이 일상을 장악하고 변형시켜 통찰로 바꾸는 내용이다. 그녀는 세상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를테면 컴컴한 거리에서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이 지나치며 주뼛주뼛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장면조차 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삶을 '되찾는다'. (183쪽) -삶을 '되찾는다'에 밑줄 열 번. * 훌륭한 책은 아니고, 아마도, 사실은, 궁극적으로는 좋은 책도 아닐 것이다.그러나 이 책은 어쨌든 지루하지 않다. 내게는 그게 제일 중요하다. 나는 의무감에서 읽고 싶진 않다. 세계의 역사에는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책이 수백 권은 있다. 나는 그저 깨어 있고 싶고, 지루하지 않고 싶고, 기계적이지 않고 싶다. 나는 내 삶을 구하고 싶다.(188쪽) -죽도록 사..

수집 2015.01.08

황인숙 시선집

잠자는 숲 내 가슴은 텅 비어 있고 혀는 말라 있어요. 매일매일 내 창엔 고운 햇님이 하나씩 뜨고 지죠. 이따금은 빗줄기가 기웃대기도, 짙은 안개가 분꽃 냄새를 풍기며 버티기도 하죠. 하지만 햇님이 뜨건 말건 안개가 분꽃 냄새를 풍기건 말건 난 상관 안 해요. 난 울지 않죠. 또 웃지도 않아요. 내 가슴은 텅 비어 있고 혀는 말라 있어요. 나는 꿈을 꾸고 그곳은 은사시나무숲. 난 그 속에 가만히 앉아 있죠. 갈잎은 서리에 뒤엉켜 있고. 난 울지 않죠, 또 웃지도. 은빛나는 밑동을 쓸어보죠. 그건 딱딱하고 차갑고 그 숲의 바람만큼이나. 난 위를 올려다보기도 하죠. 윗가지는 반짝거리고 나무는 굉장히 높고 난 가만히 앉아만 있죠. 까치가 지나가며 깍깍대기도 하고 아주 조용하죠. 그러다 꿈이 깨요. 난 울지 않..

수집 2014.11.26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 아델은 자신의 특별한 욕망을 자각한 그 순간부터 한 번도 뒤로 물러난 적이 없다. 그녀는, 우리 대부분이 그렇듯이 특별히 위대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 대부분과 달리 비겁한 사람이 아니다.......삶에 희망이 있다는 말은,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가장 따뜻한 색, 블루', '로렌스 애니웨이') * 덮개기억...사소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것을 유독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작 중요하고 본질적인 어떤 기억을 가리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것. 이 발견의 메시지는 "우리의 기억 작용이 예기치 못한 목적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얼마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

수집 2014.10.29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

1. 아주 오랫만에, 티비로 사 본 영화. 소문에, 이 영화를 만든 젊은 캐나다 여인(이 여인의 첫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노년의 부부 중 부인이 치매에 걸려 점점 남편을 잊어 가면서 요양원에서 다른 노인을 사랑하게 되는 얘기였다. 그런데 생각해 내 보려고 해도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캐나다의 침엽수림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전에는 종적이라도 희미했는데, 이젠 그냥 캄캄)이 레너드 코헨의 노래 'Take this waltz'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여, 영화보다 먼저, 극내에서 절판된 레너드 코헨의 'Im your man' 앨범을 무려 해외 주문하여 한동안 그 노래를 들었다. 이국의 젊은 영화 감독 때문이 아니라, 예전, 남산 황인숙 여사의, 이 노래에 대한 글이 떠올랐기 때문에. 내 맘대로 가..

수집 2012.12.16